생산비 중 원료비가 83% 차지…"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시급"
국제유가 급등과 원자재 수급 차질로 플라스틱 제조업계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생산비의 80% 이상을 원료비에 들여야 하는 플라스틱 제조업체들은 계속 뛰는 유가와 원자재 수급 불안에 기업이 존폐 기로에 놓일 수 있다는 우려를 놓지 못하고 있다.
23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한국플라스틱협동조합은 조만간 플라스틱 제조기업을 대상으로 원자재 가격 급등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할 계획이다. 기업들의 원자재 비용 및 증가, 수급처 등 업계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취지다. 플라스틱업계 한 관계자는 “합성수지를 제조하는 국내 대기업들이 이달 합성수지 가격을 톤당 20만 원 올린데 이어 다음달 다시 톤당 20만 원 인상한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합성수지는 플라스틱의 원재료다.
대기업들이 합성수지 가격을 연이어 인상한 것은 국제유가의 급등세 때문이다. 전날 기준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전 거래일 대비 7.1% 오른 배럴당 112.12달러를 기록했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5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이날 배럴당 115달러를 넘어섰다. 지난달 초 대비 모두 47% 가량 뛰었다.
플라스틱을 만드는 데에는 합성수지가 필요한데, 합성수지의 원료가 바로 나프타다. 나프타는 원유 정제 과정에서 추출한다. 원유 가격이 급등하면 연쇄적으로 가격이 모두 뛰어 플라스틱 업계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실제 유가 급등에 이달 초 나프타 가격은 한 주 만에 22% 넘게 뛰며 톤당 1000달러를 돌파했다.
양순정 한국플라스틱산업협동조합 상무는 “플라스틱 제조업에서 전체 생산비 중 원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83%에 달한다“며 ”사실상 원료비에 기업의 생사가 달려있다“고 말했다.
수급 문제도 플라스틱 업계의 경영난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국내 플라스틱 제조업계의 경우 나프타 수입의 러시아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러시아에서 수입한 품목 2075개를 분석한 결과 118개 품목 중 수입액이 가장 많은 품목이 나프타(43억8000만 달러)다. 나프타 전제 수입액(187억 달러)에서 러시아산이 차지하는 비중이 23.4%를 차지했다.
플라스틱 제조업의 생산 차질은 우리나라 수출 수입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중소기업의 연간 수출액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품목이 바로 플라스틱이다. 지난해 중소기업 10대 수출 품목에서 플라스틱 제품은 57억 달러로 수출액과 비중(4.9%)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양 상무는 ”수출은 물론 저가 플라스틱 수입 비중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문제는 이같은 원자재 가격 급등에도 이를 납품단가에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원자재 가격 급등에 몸살을 앓고 있는 중소 제조업체들은 경영 부담을 줄이기 위해 납품단가연동제 도입 목소리를 키우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납품단가 연동제를 대선 공약 중 하나로 내세운 이유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현 정부도 지난달 글로벌 공급망 불안 상황 속에서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표준계약서의 사용을 권장하는 식으로 자율적 납품단가 연동제를 시범 운영한다는 계획을 밝혀 업계의 기대감을 키웠다.
한 중소기업 관계자는 “최근 원자재 가격이 급등하면서 원부자재 부품 조달처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면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상승분을 납품단가에 반영해 원가 상승분을 온전히 보전받는 납품단가 연동제의 도입”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