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 부채질하는 최대 산유국 사우디의 ‘정치’

입력 2022-02-17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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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유가 배럴당 100달러 코앞
미국·IEA 증산 압박에도 사우디 증산 거부
사우디 움직이면 유가 상승 멈출 수 있다는 진단
“우크라 사태, 사우디-러 원유 동맹 시험대”

▲사우디아라비아 쿠라이스 유전. 쿠라이스/AP뉴시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지정학적 우려로 국제유가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는 가운데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가 딜레마에 빠지게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고유가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사우디가 생산을 늘려 동맹국인 미국을 도울 것인지, 증산하지 않음으로써 석유수출국기구(OPEC) 플러스(+) 회원국인 러시아를 간접 지원할 것인가를 두고 기로에 서게 됐다고 분석했다.

당장은 사우디가 미국의 증산 요구를 거절하고 러시아 편을 드는 모양새다. OPEC+는 사우디가 이끄는 OPEC 13개 회원국과 러시아 등 10개 비(非)OPEC 주요 산유국이 함께하는 협의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인플레이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에너지 가격 상승세를 꺾기 위해 사우디에 생산을 늘려 달라고 거듭 요구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9일에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과 전화통화를 해 글로벌 에너지 공급의 안정 보장 등에 대해 논의했고 밝혔다. 하지만 살만 국왕은 통화 직후 성명을 내고 ‘역사적인 OPEC+ 역할’을 강조하며 “기존 합의를 준수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OPEC+는 지난해 7월 2020년 합의했던 감산 규모를 줄이는 방식으로 같은 해 8월부터 매달 하루 40만 배럴씩 증산하기로 뜻을 모았고 이달에도 해당 계획을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의 파티 비롤 사무총장도 이날 사우디가 주최한 ‘국제 에너지 포럼’에서 OPEC+의 증산을 촉구했지만 사우디 측이 공급 확대 요구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초록색)와 브렌트유 선물 가격 추이. 16일 기준 WTI는 배럴당 93.66달러. 브렌트유는 94.81달러. 출처 월스트리트저널(WSJ)

전문가들은 사우디가 움직인다면 유가를 충분히 낮출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사우디는 하루에 최대 1200만 배럴을 생산할 수 있는데 현재 약 1000만 배럴 정도만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유가는 8년 만의 첫 배럴당 100달러 돌파를 앞두고 있다. 이날 4월물 브렌트유는 전일 대비 1.6% 오른 배럴당 94.81달러를 기록했다. 브렌트유는 올해 들어서만 20% 넘게 올랐다.

고유가는 미국에는 악재지만 러시아와 사우디에는 호재로 평가된다. 프랭크 패넌 전 미국 국무부 에너지국 국장은 “인플레이션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외환보유고를 늘리고, 동시에 자국 통화 루블 가치를 뒷받침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푸틴은 OPEC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우디의 경우 고유가가 비석유 산업을 키워 경제를 혁신하려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야심 찬 프로젝트에 거액을 투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이에 WSJ은 우크라이나 사태가 사우디와 러시아 간 에너지 동맹의 중요한 첫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러시아와 사우디는 냉전 시대 적국이었지만 2016년 러시아와 OPEC이 생산 규제 협정을 맺으면서 동맹 관계를 맺었다. 당시 사우디는 왕실에 비판적인 글을 쓰던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등으로 미국과 서방국가에 거센 비판을 받던 상황이었다.

사우디의 친러 행보는 미국으로서는 부담이다.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 사태 국면에서 러시아 제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지만, 에너지 가격 추가 상승 우려에 쉽게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대러 제재가 내려지게 된다면 원유 공급이 7% 감소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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