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반도체 학계 관계자는 최근 반도체 산업에 대한 정부 지원책의 실효성을 묻자 이렇게 답했다. 사과나무를 심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 여기에 '플러스알파'가 필요하다고 그는 힘주어 말했다.
예를 들어 'K-반도체 벨트' 전략 중 일부인 인력 양성 정책은 2년 안에 학사급, 석ㆍ박사급, 실무인력 등 총 4800명 이상의 인재를 배출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수가 적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해당 정책에 따라 양성되는 학ㆍ석사급 인력이 육성되기까지는 적게는 5년, 많게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당장 현장에 투입될 고급 인력을 원하는 산업 현장의 목소리와는 동떨어져 있다.
세제 혜택이나 설비 투자 지원 정책도 이런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중견ㆍ중소기업 R&D 지원 확대, 반도체 전문 인력을 위한 세액 공제 혜택 도입, 반도체 제조시설 투자 유인 증대, 집단연구 체제 마련 등 추가 대책이 전제되지 않는 한 유의미한 정책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뜻이다.
문제는 정부가 사과나무를 심는 것조차 망설이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마련된 국가 핵심전략산업 특별법(일명 반도체 특별법)은 정치권과 정부 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해 8개월 가까이 표류 중이다. 최근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에선 기획재정부가 특별법 일부 조항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뜻을 표명했다. 미국과 중국은 물론, 유럽, 일본 등 세계 각국이 반도체 산업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쏟아붓고 있는 것과는 대비되는 행보다.
2010년대 인력 양성과 기술 고도화 두 가지 과제를 기업에 전적으로 맡긴 정부의 선택은 반도체 업계에서 뼈 아픈 패착으로 기억된다. 그나마도 이 시기 전력을 다해 기술을 발전시켜온 기업들 덕에 국내 반도체 산업은 잘 커왔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이 하루가 다르게 가팔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전과 같은 성장 문법이 들어맞긴 어렵다. 기업과 학계, 정부가 머리를 맞대야만 기술 확보와 인력 양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