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나이 든 교수를 내보내면 일자리가 나올까”…‘더 체어’와 정년 연장

입력 2021-08-26 17:30

  • 작게보기

  • 기본크기

  • 크게보기

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와 사회를 바라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아이비리그 대학 펨브로크 영문학과에서 여성 최초로 학과장 자리에 오른 한국계 여성 지윤(산드라 오)은 학과의 산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한다. (넷플릭스)

백인 남성 일색이던 아이비리그 대학 영문학과에서 최초로 여성 학과장이 된 한국계 여성 지윤(산드라 오 분). 성취의 기쁨도 잠시, 학과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상황이다. 인문학의 위기로 학과 수강생은 줄고 있는 데다가, 학교는 지윤에게 나이 든 종신 교수 3명 중 한 명의 해고를 떠맡긴다.

나이 들어 강의력은 떨어지고 학생들에게 인기도 없는 종신 교수 3인방. 지윤은 그 중 한 명을 해고해야 젊고 능력 있는 흑인 여성 교수 야즈를 종신으로 채용할 수 있다. 하지만 3명 중 아무도 나갈 생각을 하지 않고, 오히려 학생들에게 인기 많고 능력 있는 야즈를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체어'(The chair, 2021)다.

일자리를 두고 벌어지는 세대 갈등은 한국 사회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기성 세대는 정년 연장을 요구하지만 청년은 현재 가뜩이나 부족한 일자리가 더 부족해질까 우려한다.

정년 연장 요구는 은퇴 연령이 점차 빨라지며 제기됐다. 일명 '소득 크레바스' 때문이다. 소득 크레바스란 직장에서 은퇴해 국민연금을 받을 때까지 소득이 없는 기간을 말한다. 현재 법적으로 정해진 정년은 60세이지만, 실제 퇴직하는 나이는 49.3세(2021년 5월 국세청 발표 고령층 부가조사)다.

국민연금 수령은 그보다 더 늦어, 최대 15년까지 공백 기간이 발생한다. 그 이후 연금을 받아도 생계를 이어가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그 결과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꼴찌를 달리고 있다.

또 노인 인구는 증가하고 있는데 저출산으로 생산 가능 인구는 줄고 있다. 반면 평균 수명이 늘어나며 충분히 일할 수 있는 건강한 60대가 많아지고 있다. 정년 연장이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학과 내의 유일한 흑인 교수 야즈(나나 멘사 분)는 명석하고 뛰어난 강의력을 갖고 있지만, 종신 계약 여부를 앞두고 백인 남성 교수 엘리엇의 견제를 받는다. (넷플릭스)

정년 연장을 반대하는 목소리 역시 만만치 않다. 기업은 인사 적체와 생산성 약화를 우려한다. 조직이 늙어갈수록 기업의 혁신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년 연장이 노동 빈곤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을 거란 분석도 있다. 정년 연장이 이뤄져도 사실상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에 집중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 세대 중 정년 연장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비율을 11.4%로 추정한 연구 결과도 있다.

다만 정년 연장이 실제 청년 실업에 악영향을 미치는 지에 대해서는 전문가들마다 의견이 엇갈린다. 지금처럼 연공 서열제와 고용 경직성이 강하면 정년 연장이 청년 일자리 창출에 장애물이 되겠지만, 한국 은행은 청년층과 고령층의 고용이 서로 보완 관계를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영문학과는 인문학의 위기 속에 변화를 요구 받지만, 기존 종신 교수들은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 (넷플릭스)

대선이 다가오면서 다시 정년 연장 논의에 불이 붙고 있다. 대선 후보들은 앞다퉈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 정년을 늘리겠다며 관련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사실 정년 연장은 문재인 정부가 정권 초기 적극적으로 추진했으나 반대가 거세 지금은 '계속고용제'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계속 고용제는 근로자가 만 60세에 도달한 이후, 고용 연장 의무를 부과하되 재고용·정년 연장·정년 폐지 등의 선택지를 주는 제도다. 이미 일본에서 도입된 제도로, 완전한 정년 연장보다는 좀 더 탄력적이다. 정부는 2022년까지 계속고용제 도입 여부를 논의할 계획이다.

▲수십여년 전 성차별을 딛고 종신 교수가 된 조앤(홀랜드 테일러 분)은 세월의 여파로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해고 리스트'에 오르는데, 다른 남자 동료들과 달리 체육관 구석진 곳으로 연구실을 배정받는다. (넷플릭스)

'더 체어'에서 야즈는 고일 대로 고여버린 학교에 질려 예일대로 떠난다고 선포한다. 그의 대사처럼 '이 바닥을 쥐락펴락하는 권력이 40년 만에 끝나게 돼 아쉬운' 늙은 백인 남성 교수에 밀려 조직을 떠나기로 한 거다. 이러한 갈등 속에 드라마는 성차별과 인종차별, 인문학의 위기 등 각종 사회 문제를 드러낸다.

아시아계 여성이자 싱글맘으로 고군분투하는 학과장 지윤, 명석하고 강단있지만 흑인 여성으로 늘 이중의 차별을 견딘 야즈, 동료 교수들과 함께 해고 리스트에 올랐으나 여자란 이유로 가장 해고 가능성이 높은 조앤까지. 드라마는 이들을 통해 성별·인종·자본 등 각종 차별 기제가 함께 맞물려 작용한다는 ‘교차성 이론’을 보여준다.

▲흑인 여성 교수인 야즈와 아시아계 최초 여성 학장 지윤, 해고 위기를 맞은 여성 교수 조앤은 서로 갈등하면서도 연대한다. (넷플릭스)

한정된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갈등은 표면적인 문제다. 드라마에서도 현실에서도 일자리 문제에는 계급과 각종 차별, 부의 불평등이라는 시대의 모순이 녹아있다. 한국에서 대학 졸업 후 정규직 일자리를 차지한 뒤 부동산 자산을 형성한 586세대는 일부에 불과하다. 80년대 대학 진학률은 줄곧 30%대였다.

많은 것을 갖고 누린 50대의 자식은 명문대 진학률 역시 높고 정규직 일자리도 많이 차지했다. 반면 배우지 못한 채 고단한 IMF를 보내고 자산 형성에 실패한 대다수 50대의 가난은 그들 자식에게 전해지고 있다. 나이 든 교수와 노동자만 내보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뉴스
댓글
0 / 300
e스튜디오
많이 본 뉴스
뉴스발전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