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리는 공정지도] 태어나니 3루, 그래도 그들에겐 '노력의 결과'

입력 2021-07-20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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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미터 의뢰 '20·30대 인식조사' 결과…부모 학벌, 본인 계층의식 높을수록 공정화 부정적

“어떤 사람은 3루에서 태어나 놓고 자기가 3루타를 친 줄 압니다.”

지난해 2월 종영된 SBS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흙수저 프로야구팀 단장’ 백승수(남궁민 분)가 자신을 훈계하는 ‘금수저 구단주대행’ 권경민(오정세 분)에게 했던 말이다. 현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모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본인의 사회계층이 높을수록 불공정한 사회를 공정하게 바꾸는 노력에 거부감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본인이 성취한 사회계층을 ‘공정한 노력의 결과물’로 여기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투데이가 리얼미터에 의뢰해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전국 19~39세 남녀 500명을 대상으로 ‘20·30대 인식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P))’를 실시했다. 조사 대상 총 4개 유형(‘학창시절 중 성적, 학습지도, 입시지도 등 학교생활 전반’ ‘취업이나 승진, 인사발령’ ‘행정·법조·의료서비스 등 이용’ ‘사적 모임이나 지역·회사 내 커뮤니티 가입·활동’) 중 응답자들은 평균 1.5개 유형에서 불공정을 경험했다.

사회가 공정하다는 데 동의(동의·매우 동의)하는 비율은 문항별(7개)로 14.7~29.0%에 불과했다. 불공정 경험과 공정성에 대한 인식이 공정화에 대한 동의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공정화 관련 문항별(7개) 동의율은 33.2~66.2%에 머물렀는데, 전반적으로 비수도권 거주자와 여성, 저학력·저소득층에서 공정화 동의율이 높았다.

회귀분석 결과, 공정화 동의도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부모 교육 수준과 본인 소득 수준·사회계층, 성별이었다. 영향은 부모 교육 수준에 따라 다르게 나타났는데, 고학력 부모를 둔 이들은 본인이 속한 사회계층이 높을수록, 저학력 부모를 둔 이들은 성별이 남성일 때 공정화에 부정적이었다. 전자가 ‘기득권 정당화’라면, 후자는 ‘역차별 불안감’ 차원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내세우는 공정론에 대한 공감도도 개인 특성에 따라 큰 차이를 보였다. 전반적으로 본인·부모의 사회계층이 높아질수록 ‘이준석 공정론’에 공감도가 높아졌다. 이 대표의 공정론은 능력주의로 요약된다. 누구나 정해진 ‘룰’에 따라 경쟁하고, 그 결과에 따라 보상을 차등하는 것이다. 필기시험, 어학 점수 등 계량화 가능한 ‘스펙’을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평가가 객관적일 순 있으나 사교육, 어학연수 등 부모 경제력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20·30대의 공정론은 ‘자기중심적 공정론’으로 요약할 수 있다. 통일된 기준으로 공정하냐, 아니냐를 따지기보단 본인의 상황에서 자기에게 유리한 기준을 ‘공정’으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청년들이라고 해서 하나의 통일된 공정 담론을 형성하는 건 아니다”며 “수저계급론으로 표현되는 부모의 경제력이 자녀의 공정 담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부모의 자산계층을 승계함으로써 기득권층이 된 청년들은 ‘수저가 먹히는’ 현 상황이 유리하기 때문에, 사회를 바꾸는 것에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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