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크래커] 유네스코가 일본에 "강한 유감" 경고 날린 이유

입력 2021-07-13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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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日, 군함도 강제 노역 사실 제대로 알려야"
"강제 노역 사실 기술 부족, 희생자 기리는 조치 부족"
모테기 외무상 "약속한 조치 이행"…역사왜곡 '고수'

▲2015년 6월 6일 일본 나가사키현 소재 군함도로 향하는 여객선에서 낡은 건물들이 보인다. (연합뉴스 )

유네스코가 일본 정부의 군함도 역사 왜곡과 관련해 "강한 유감"이라는 표현까지 쓰며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일본 정부가 군함도 등 근대 역사 유산에서 한국인 등이 강제 노역한 사실과 일제 강제 징용 정책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희생자를 기리기 위한 조치 역시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12일 공식 홈페이지에 '일본 근대산업시설 결정문안'을 게재했다. 결정문에는 일본의 근대 역사 유산과 관련 "당사국(일본)이 관련 결정을 아직 충실히 이행하지 않은 데 대해 '강한 유감'(strongly regrets)"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앞서 세계유산위원회는 2018년에도 일본에 강제 노역 등 근대 유산의 어두운 역사를 알리라고 촉구했는데, 이 결정을 따르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국제기구의 문안에 강한 유감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2018년 당시 세계유산위원회는 역사를 제대로 알리라며 '강력 촉구'(strongly encourage)라는 표현을 썼다.

유네스코는 2년마다 세계문화유산의 해당국이 위원회의 결정을 잘 이행했는지 점검을 하고 결정문을 내고 있다. 해당 결정문은 오는 16일부터 31일까지 온라인으로 열리는 제44차 회의에서 토론 없이 채택될 것으로 보인다.

유네스코가 특히 문제 삼은 '산업유산정보센터'…무엇이 문제길래?

▲지난해 6월 15일 첫 개관한 일본 도쿄 신주쿠의 총무성 제2청사 별관의 산업유산정보센터 (연합뉴스)

유네스코는 이날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와 꾸린 공동조사단이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한 내용을 담은 실사 보고서도 공개했다. 지난해 6월 문을 연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군함도를 비롯해 일본의 근대화 시기인 메이지 시대 산업 유산을 소개하는 전시관이다.

일본은 앞서 메이지 시대 산업시설 23곳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희생자들을 기리는 정보센터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게 세워진 산업유산정보센터는 희생자를 기리는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데다가, 제2차 세계대전 중 군함도에서 생활했던 한국인 노동자가 "괴롭힘을 당한 적이 없다"고 말한 영상 자료 등을 전시하는 등 강제 노역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다.

▲일본 나가사키 시에서 배포되는 군함도 홍보 자료. (연합뉴스)

호주, 벨기에, 독일의 세계유산 전문가로 구성된 공동조사단은 지난달 7~9일 도쿄의 산업유산정보센터를 시찰했다. 조사단은 보고서에서 산업유산정보센터가 세계유산위의 권고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한국 등에서 온 노동자들이 있다는 전시가 있긴 하지만, 그 전시만으로 강제 노역 사실을 인정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꼬집었다. 유사한 역사를 지닌 독일 등 국제 모범 사례와 비교할 때 희생자를 위한 조치가 미흡하다고도 밝혔다.

공동조사단은 또 전시관이 실제 유산이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점도 지적했다. 산업유산정보센터는 군함도는 물론 다른 근대 유산과도 멀리 떨어진 도쿄도 신주쿠구 총무성 제2청사 별관에 자리해 있다.

일본 정부 "약속한 조치를 이행해왔다"…꿈쩍도 안해

▲지난해 9월 17일 '스가 내각' 출범 후 기자회견 당시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 (AP/뉴시스)

일본 정부는 유네스코의 결정문에 꿈쩍도 하지 않는 모양새다. 오히려 그동안 유네스코의 권고를 성실히 따라왔다며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일본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은 13일 기자회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회의 결의와 권고를 진지하게 받아들여 정부가 약속한 조치를 포함해 성실히 이행해 왔다"고 말했다.

아울러 모테기 외무상은 "16일부터 31일까지 개최되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므로 지금 입장을 밝히는 것은 삼가겠다"면서도 "일본의 이 같은 입장을 감안해 적절히 대응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조선인 노동자들의 징용이 국내법에 따라 이뤄졌으며 불법적인 형태의 강제 노동은 없었다는 과거의 주장을 고수한 것이다.

하지만 2015년 세계유산 등재 당시, 일본은 근대화 유산에 강제노역 사실을 분명히 명시하고, 인포메이션 설치해 희생자를 기리는 적절한 조치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사토 쿠니 당시 주 유네스코 일본 대사는 "수많은 조선인과 여타 국민이 본인 의사에 반해 동원돼 가혹한 조건 아래 강제로 노역한 사실을 알릴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해당 발언은 당시 결정문 본문에 담기지 않았지만 ‘후속 조치 이행을 약속한 일본 대표 발언을 주목한다’고 각주에 명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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