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현 퍼셉션 대표
디자인컨설턴시를 운영하다 보니 디자이너 소개나 해외 스튜디오 연결 요청을 꽤 자주 받는데 그럴 때마다 “어떤 디자이너가 왜 필요하신가요? 해외팀은 왜요? 국내에도 좋은 팀들이 많아요”라고 대답한다. 보통은 기획이 완료되면 디자이너가 알아서 멋지게 가시화해 줄거라 기대하지만 기획 따로 디자인 따로일 때가 종종 있다. 개인 취향의 개입이 불가피하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기 어려운 디자인 과정은 끝없는 논쟁의 반복이다. 유명 해외 디자이너를 섭외해도 마찬가지다. 어떤 때는 해외 디자이너의 작품에 국내 팀이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려 과정을 다시 만드는 일도 벌어진다. 디자이너 입장에서도 언어로 기획된 것을 시각화하는 것은 쉽지 않은 여정이다. 여기에는 논리로 설득하기 어려운 디자이너만의 ‘블랙박스’가 존재하며 박스 안의 화학작용은 디자이너 개인마다 다르다. 의뢰자는 디자인을 통해 어떤 메시지와 느낌을 전달하고 싶은지 정리하지 못한 채로 디자이너를 찾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좋은 케미의 디자이너를 찾기란 모래사장에서 반지 찾기보다 더 어렵다. 한 사람이 모든 스타일을 구현할 수도 없고 디자이너마다 각자의 역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건축 초기부터 3년을 넘게 참여한 모 대기업의 통합연구소 프로젝트가 생각난다. 당시 해외 설계사의 디자인은 난생 처음 보는 난해한 조형이었는데 과연 국내 팀이었다면 어땠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국뽕을 맞은 것도 아니면서 대기업이 국내 팀과의 협업을 늘리지는 못할망정 왜 이리 해외사를 선호할까 욱하기도 했다. 그러나 업(業)의 본질, 연구소 존재의 이유 등 기업이 공간을 통해 임직원을 비롯한 여러 이해관계 그룹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알면 알수록 그 어색했던 디자인에 공감이 갔다. 설계 팀의 의도와 풀어낸 과정을 보니 과연 국내에서 이런 대안이 가능했을까 싶기도 했다. 당시의 동료들과 “인왕산과 그랜드캐년을 보고 자란 디자이너들은 각각 조형 언어가 다를 수밖에 없겠다”는 이야기를 나누다, 결국 하고 싶은 이야기가 명확해야 그것을 잘 풀어 줄 디자이너를 찾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 상황에서는 국내냐 해외냐에 민감할 필요가 없겠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디자인이 필요할 때 “디자이너 어디 없나? 일단 유명한 사람으로. 회장님 좋아하는 디자이너랑 그냥 해”라는 경우도 자주 접한다. 더 중요한 것은 명성이나 스타일 이전에 어떤 목적의 디자인이 필요한지 정하는 일이다. 엉망진창 문제투성이의 해결인지, 괜찮아 보이지만 여전히 개선 여지가 많은 일상의 해결책인지, 새로운 영감으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고 더 많은 상상력과 창의력을 가능하게 하는 디자인인지, 도대체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먼저 생각해야 한다.
제품이든 서비스든 무엇을 디자인할 때 내부의 지향 가치와 밖으로 발신하고 싶은 메시지를 명확히 하고, 그 가치에 공감하고 가장 잘 표현해 줄 디자이너를 찾아야 한다. 디자이너도 어떤 경험을 자기 감각으로 체화시켰는지에 따라 모두 스타일이 다르므로, 구체적 필요가 정리되었다면 기준 안에서 최대한 다양한 디자이너를 만나 볼 필요가 있다. 또한 미니멀한 조형이 강점인 디자이너에게 화려하고 복잡한 것을 강요하지 않아야 하는데, 각자 하고 싶은 말과 자신 있는 무기가 있듯 디자이너도 그것을 존중받을 때 가장 훌륭한 퍼포먼스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요자나 공급자나 일의 목적을 명확히 하고 경험의 확장으로 다양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포용력을 기르며 여러 선택지 중 지금 나에게 적합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어느덧 디자인을 보는 시각도, 좋은 디자인을 하게 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