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측 "대법원 판례 정반대, 매우 부당"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에서 강제노역을 한 피해자와 유족들이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패소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부(재판장 김양호 부장판사)는 7일 강제징용 노동자와 유족 85명이 일본제철·닛산화학·미쓰비시중공업 등 일본 기업 16곳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각하했다. 각하란 소송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본안을 심리하지 않고 내리는 결정이다.
재판부는 “한일 청구권 협정에 따라 개개인의 청구권이 소멸되거나 포기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소송으로 이를 행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고 각하 이유를 밝혔다.
이번 사건은 2015년 5월 처음 소송이 제기된 이후 일본 기업들이 소송에 응하지 않아 수년간 지연됐다. 법원이 올해 3월 공시송달을 진행하고 선고기일을 지정하자 일본 기업들이 뒤늦게 국내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하면서 소송이 재개됐다.
일본 기업들의 대리인은 지난달 진행된 첫 재판에서 피해자들의 주장을 확인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이미 두 차례 대법원의 판단을 받은 사건으로 법리가 다 정리됐다”며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 기일을 지정했다.
재판부는 해당 사건 판결을 10일에 선고할 예정이었지만 이날 돌연 선고를 앞당기겠다고 원고와 피고 측에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8년 10월 이춘식 씨를 비롯한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이 일본제철(옛 신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여 1인당 1억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일본제철이 배상을 미루자 법원은 2019년 1월 피해자 변호인단이 제출한 일본제철의 한국자산인 피엔알(PNR) 주식 8만1075주에 대한 압류 신청을 승인했고 같은 달 9일 PNR에 압류 명령을 송달했다.
대구지법 포항지원은 2019년 압류 명령 송달 절차를 시작했지만 일본 외무성이 해외 송달요청서를 받고도 수차례 반송하자 국내 법원은 공시송달을 결정했다. 이후 법원은 올해 초 일본제철의 한국 내 자산인 피앤알(PNR) 주식을 현금화하기 위해 감정을 진행하는 등 자산 매각에 속도를 올리고 있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이날 재판이 끝난 뒤 기자회견을 열어 항소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장덕환 강제징용 피해자단체 대표는 "자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와 정부는 우리에게 필요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해자들 소송대리인 강길 변호사는 “오늘 판결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정반대로 배치돼 매우 부당하다”면서 “(배상)청구권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는 논리적으로 심판 대상으로 적격이 있다는 것인데 재판부가 양국 간 예민한 사안이라 다르게 판단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