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폴트옵션은 해외 선진국 중 상당수가 이미 도입한 제도다. 다만 나라별로 상황이 다르다. 미국, 호주는 디폴트옵션에 실적배당형 상품만 두고 있지만 일본에선 원리금보장형까지 포함했다. 디폴트옵션의 국내 도입을 앞두고 국내에 맞는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디폴트옵션으로 실적배당형 상품에 투자할 경우 장이 나쁠 땐 마이너스 수익이 날 수 있다는 것에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27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보고된 20개 국가 중 디폴트옵션 미도입국은 한국을 비롯한 에스토니아, 체코, 슬로바키아공화국 등 4개국에 불과하다. 이 가운데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43.8%로, OECD 평균 14.8%를 크게 상회한다. 노후 대비를 위한 퇴직연금 제도 마련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미국은 1981년 ‘401K’라고 불리는 퇴직연금 제도를 도입하면서 디폴트옵션을 넣었고, 호주도 1992년 퇴직연금에 이 제도를 선택했다. 두 나라는 실적배당형으로만 이뤄져 있다. 덕분에 연평균 수익률은 7~9%(2013~2019년) 수준으로 집계됐다. 다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불어닥쳤던 2018년에는 미국 퇴직연금 수익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기도 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한국의 경우도 퇴직연금펀드 수익률이 2008년, 2018년 마이너스 수익률을 기록한 적이 있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을 내는 것은 확실하지만 해외 선진국처럼 마이너스 수익률이 나도 본인 선택에 따른 책임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은 2018년 1월 디폴트옵션을 도입하면서 실적배당형뿐만 아니라 원리금보장형도 추가했다. 마이너스 수익률에 대한 불안감이 컸기 때문이다. 전체 자금의 75%가 원리금보장형에 들어가 있고, 최근 7년(2013~2019년)간 연평균 수익률은 2.31% 수준에 그쳤다.
디폴트옵션의 설정 주체도 나라마다 다르다. 설정 주체는 향후 퇴직연금 관련 법적 분쟁이 발생했을 때 책임 주체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디폴트옵션을 제도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사안으로 볼 수 있다. 현재 한국에서 논의 중인 개정안에는 기업(사용자)이 아닌 금융기관(퇴직연금사업자)이 디폴트옵션의 설정 주체다.
미국 기업연금에서는 디폴트옵션의 설정 주체가 기업이다. 대신 원금손실의 가능성이 있는 실적배당형의 디폴트옵션을 설정한 기업에 손실 면책을 부여한 연금법 개정이 제도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한국에서도 퇴직연금사업자의 손실 면책이 보장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계약형 지배구조인 우리 퇴직연금제도에서 호주의 ‘마이슈퍼(MySuper)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봄 직하다. 호주는 단일 디폴트옵션인 마이슈퍼를 두어 투자전략을 단순화하고 가입자가 디폴트옵션 상품 비교를 용이하도록 표준화된 상품설명서를 제공하고 있다. 이를 통해 디폴트옵션 투자 상품을 만드는 운용사 간 객관적이고 투명한 경쟁 구도를 조성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디폴트옵션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제기구와 관련 전문가를 중심으로 제도 도입의 필요성과 타당성은 충분히 검증되고 논의된 사안”이라면서 “이제는 제도 도입을 전제로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기대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실행 체계와 관리 감독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퇴직연금은 금융시장의 불쏘시개가 아니라 국민 다수의 노후가 걸린 문제”라면서 “업권 간 이해득실에 집착하여 제도 개혁의 첫 단추를 잘못 꿰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