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mRNA백신 종주국’ 위상 위협 의식 분석도
EU, 백신 18억 회분 추가 확보…미국 부스터샷 검토
8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 27개국 정상들은 포르투갈에서 이틀에 걸쳐 비공식 화상회의를 갖고 지재권 면제를 논의했다. 이들은 앞서 미국이 제시한 백신 지재권 면제는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며 반대 입장을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특허권을 그냥 제공한다고 더 많은 사람이 백신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품질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오히려 위험이 더 클 수 있다”고 말했다.
지재권은 혁신의 원천으로 반드시 보호해야 하며, 만약 이를 논의하더라도 백신 생산에는 품질 관리와 기술이 중요한 만큼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다. EU 일각에서는 백신 지재권 보호 면제 절차에 2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해 현재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대응과는 거리가 멀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화살을 미국으로 돌리기도 했다. 글로벌 백신 공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미국이 백신 수출 규제부터 푸는 게 우선이라는 이유에서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지재권 보호 면제가 특효약이라는 생각에 의문을 품고 있다”면서 “백신뿐 아니라 백신 원료 수출을 금지하는 미국의 규정이 오히려 공급을 막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유럽 국가 중에서도 독일이 지재권 면제 방안에 적극적으로 반기를 들고 나선 데에는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 종주국으로서의 위상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있다. 전 세계 mRNA 코로나19 백신 생산 또는 생산이 임박한 업체 3곳 중 2곳이 독일 회사다. mRNA 기술 기반 백신 분야 선두주자 입장에서 지재권 면제가 결코 달갑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미국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지재권 면제 지지 입장을 밝혔지만 미국 정부도 화이자와 모더나의 mRNA 기반 백신 기술이 중국과 러시아로 유출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어서다.
이에 당사자인 백신 제조사들도 지재권 면제에 호의적이지 않다. 앨버트 불라 화이자 최고경영자(CEO)는 “지재권 보호 면제가 오히려 더 많은 문제를 일으킬 것”이라고 내다봤으며, 우구르 사힌 바이오엔테크 창업자 겸 CEO도 “백신 지재권을 면제하더라도 글로벌 백신 공급이 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수출 길을 막고 있는 미국과 특허권을 포기 못하겠다는 유럽의 백신 창고에는 나날이 여유분의 백신이 쌓여가고 있다. EU의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는 이날 2023년까지 화이자 백신 최대 18억 회분을 공급받는 새 계약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이는 기존에 확보한 화이자 백신 6억 회분에 추가분이 더해진 것으로, 전체 EU 인구 4억5000만 명의 부스터샷(추가접종)까지 아우르는 충분한 물량이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계절성 백신 부스터샷의 필요성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에서 부스터샷 결정이 내려지면 세계 각국의 백신 수급은 한층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