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전 에스케이 사장
욕심, 의심, 변심을 나는 오너 3심(心)이라 불렀다. 주변에 얘기하면 모두가 정곡을 찔렀다며 박장대소를 했다. 공감하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필자의 결론은 그게 아니었다. 통상적인 관찰로는 그게 가능하다. 그러나 기업가 정신으로 보면 오너 3심은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
이건희 회장과 스티브 잡스를 비교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건희 회장이 스티브 잡스보다 위대하다고 결론지었다. 첫째 이건희 회장은 암을 이겼다. 그런데 잡스는 암에 졌다. 물론 이건희 회장은 돌아가셨지만 암이 직접적 원인은 아니었다. 둘째 이건희 회장이 위대한 것은 한국에서 기업을 경영했다는 것, 반면 스티브 잡스는 실리콘 밸리를 떠나지 않았다. 두 곳의 기업 환경을 비교해 보면 한국에서 이건희 회장이 이뤄낸 것은 기적에 가깝다. 스티브 잡스에게 한국에서 사업하라고 했으면 일찌감치 포기했을 것으로 나는 믿는다. 마지막으로 이건희 회장은 욕심이 많았다. 휴대폰, TV 뿐 아니라 어린이집, 양로원, 심지어 장례식장까지 신경을 썼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휴대폰만 잘 만들면 됐다. 그만큼 이건희 회장은 욕심이 많았다. 그리고 욕심을 낸 것은 거의 초일류로 만들어 냈다. 욕심은 세계적 경쟁력의 원천이었다. 그의 기업가 정신을 최고조로 발휘하게 한 것은 욕심이었다.
의심은 기업인들의 숙명이다. 돈이 좀 모이면 끊임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두가 좋은 학력, 준수한 외모에 장밋빛 청사진을 가지고 덤벼든다. 내일이면 바로 일확천금이 될 땅이라고 유혹하고 다시는 못 올 기회라며 두툼한 사업계획서를 보여준다. 그러나 기업인들은 안다. 이대로 하면 내일이 지나지 않아 내 돈이 금방 날아가 버린다는 것을. 그렇게 좋은 것이면 자신들 돈으로 하지 왜 내 돈을 가지고 하려고 하나. 의심 없이는 하루도 버티기 힘든 것이 기업경영이다. 의심은 달리 말하면 성공의 동반자다.‘의심은 사람을 뭉치게 한다’ 피터 유스티노프의 격언이다.
오너들은 대개 가족이나 친구들과 사업을 시작했다. 이병철 회장의 파트너 조홍제 회장, 구인회 회장의 파트너 허만정 회장, 정주영 회장의 여섯 형제들, 모두가 이 범주에 든다. 친구끼리 사돈을 맺어 친척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결별을 하고 각자의 길을 걸었다. 변심은 새로운 시스템과 인재를 찾는 동력이다. 인지상정으로만 되는 것은 아닌게 경영이기에 변심하고 결별한다. 동네 골목대장으로 만족할 수는 없기에 새로운 사람을 맞아 들인다. 이것이 변심이다. 변심은 익숙한 과거와의 결별이자 정답이 없는 미래와의 만남이었다. 기업가 정신이 싹트기에 가장 좋은 토양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오너들의 욕심과 의심, 변심만으로 회사가 커 가는가? 그렇지 않다. 오너가 있으면 전문경영인들이 있다. 이들에게도 3심이 있다. 이들은 대개 소심하다. 오너들이 세계에서 가장 큰 공장을 짓자 하면 만류한다. 세계시장이 아직 크지 않으니, 정부나 여론이 반대하고 있으니 등등이 이유다. 그런데 오너들의 욕심은 전문경영인들의 소심과 만나 탐욕으로 흐르지 않게 조절된다. 과속으로 질주하지 않게 브레이크가 잡힌다. 욕심은 소심으로 인해 제대로 된 모양이 갖추어진다.
전문경영인들은 세심하다. 선경이 1994년 제2이동통신을 포기하고 KT의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하기로 한 순간 인수비용은 1000억 원에서 4271억 원으로 4배가 넘게 뛰었다. 최종현 회장은 손길승 회장(당시 사장)에게 장만하라고 했다. 손 회장이 평소 세심하지 않았으면 그 많은 돈을 순식간에 조달해 낼 수 있었을까? 전문경영인들의 세심함은 신사업을 통한 기업 성장의 원동력이었다.
전문경영인 역시 변심한다. 오너들이 3~4세로 넘어가면 그들의 역할도 변한다. 그래서 다른 기업으로 가기도 하고 스스로 오너가 되기도 한다. 이명박 사장은 아예 정치에 뛰어들어 오너들을 호령하는 대통령이 되기도 했다. 변심은 그들 나름의 성장 비법이었고 제2의 인생을 위한 발판이 됐다.
기업 경영에 왕도는 없다.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세 가지 마음은 모두 같다. 간절히 뜻을 모으고 더불어 정성을 쏟는 것이 기업가 정신의 요체이자 핵심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