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일본 대지진 10주년] 더 무서운 지진 온다…‘슬로우 슬립’에 힌트 있어

입력 2021-03-10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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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내 수도직하지진·난카이 트로프 지진 발생 확률 70~80%
일본 최빈국으로 전락할 수도
슬로우 슬립, 지진 조기 경보에 도움 기대

▲동일본 대지진 나흘 뒤인 2011년 3월 15일 일본 미야기현 미나미산리쿠 정이 쓰나미로 황폐화 돼 있다. 미야기/AP뉴시스

전 세계를 방사능 공포에 떨게 한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한 지 11일 자로 10년이 흘렀다. 강진과 쓰나미로 2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동일본 대지진의 여파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탱크는 언제 바다 생태계를 파괴할지 모르는 ‘시한폭탄’ 그 자체다. 지난달 발생한 후쿠시마 7.3규모 강진도 동일본 대지진의 여진으로 추정된다. 과거 뒤처리도 버거운데 더 강력한 지진 가능성에 일본이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전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을 능가하는 지진이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정부 산하 지진조사위원회는 30년 안에 도쿄 등 수도권을 강타할 수도직하지진과 난카이 트로프(해저협곡) 지진이 발생할 확률이 각각 70~80%대에 이른다고 추정했다. 수도직하지진과 난카이 트로프 지진은 피해 규모가 상상을 초월, 일본이 특히 두려워하는 지진으로 꼽힌다.

수도직하지진은 도쿄도, 가나가와현, 지바현, 사이타마현, 이바라키현 등 일본 관동지방 남부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측되는 규모 7 가량의 대지진을 말한다. 난카이 트로프는 시즈오카현 쓰루가만에서 규슈 동쪽 태평양 연안 사이 깊이 4000m 해저에 있으며 지구 지각의 유라시아판과 필리핀판이 만나는 지점이다.

일본 토목학회가 분석한 ‘난카이 트로프 거대지진 또는 수도권 직하 지진 발생 시 장기 경제적 피해 추산’에 따르면 대지진 위험 지역으로 꼽히는 ‘난카이 트로프’에서 지진이 발생하면 직·간접적으로 향후 20년간 최대 1410조 엔(약 1경3700조 원) 규모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직접적인 피해액도 동일본 대지진의 5~10배에 달해 일본이 최빈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보고서는 거대지진으로 난카이 트로프 인접 지역의 도로가 끊기고 공장이 무너질 경우를 가정해 그 피해 규모를 추산했다. 대지진으로 교통인프라와 생산시설이 마비될 경우 장기적으로 국민소득 또한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게 학회 측의 판단이다.

수도직하지진의 직접적 피해액도 47조4000억 엔으로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2.8배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오이시 하사카즈 학회장은 “이 정도의 경제적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일본이 동아시아의 최빈국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학회 측은 도로·항만·제방 등에 대한 내진 보강공사를 실시할 경우 장기적 피해 규모를 추정치보다 30~40% 정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도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특히 거대 지진의 징후를 예측할 것으로 기대되는 ‘슬로우 슬립(slow slip)’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슬로우 슬립은 지각판의 경계면에서 한쪽 판이 다른 판의 아래로 미끄러지듯 서서히 파고드는 현상으로 통상적인 지진보다 지각 변동이 훨씬 점진적으로 이뤄진다.

학계에서는 슬로우 슬립 현상을 연구하면 지진 조기 경보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체계를 이해하고 쓰나미와 지진의 상관관계를 밝혀 조기 경보 전략을 찾는 게 목표다.

슬로우 슬립을 집중적으로 연구한 결과, 난카이 트로프 진원 주변에서 현재 다양한 슬로우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발생 빈도도 1~2년에 한 번씩으로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슬로우 슬립 활성기에는 정체기보다 규모 5 이상의 큰 지진이 6.2배 빈도로 발생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도 슬로우 슬립 활성기에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도쿄대 가토 데루유키 지진 연구소 교수가 동일본 대지진의 진원지 부근 지진 활동을 상세하게 분석한 결과, 대지진 발생 약 1개월 전부터 두 차례 슬로우 슬립이 확인됐다. 일본 쪽 북미판과 태평양판이 이루는 경계에서 슬로우 슬립이 발생, 이로 인해 단층이 30~50cm가량 움직였고 지진과 쓰나미가 일어났다는 분석이다.

일본 정부는 한신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을 계기로 육·해·공에서 국내 지각변동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방재과학기술 연구소의 하이넷(고감도 지진 관측망)은 20㎞ 간격으로 홋카이도에서 규슈까지 약 800개소에 설치됐다. 사람이 느낄 수 없는 미약한 진동까지 정확하게 기록한다.

해저에도 퍼져 있다. 거대 지진 발생이 우려되는 난카이 트로프의 구마노나다 해역과 기이반도의 기이수도 해역에 총 51개의 관측 지점이 설치돼 있다. 지진계·수압계·온도계 등 다양한 센서를 통해 매일 측정한 데이터가 해저 케이블을 통해 지상의 기상청과 연구기관에 전송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후에는 홋카이도 앞바다에서 치바현 보소반도 앞바다까지 150개소 관측 지점이 정비됐다.

하늘에서 지각 변동을 파악하기도 한다. 국토지리원의 ‘전국 지속적 GPS 관측망(GEONET)’은 인공위성을 이용한 측량 기술로 융기와 침강 등 지각변동을 상시 측정한다.

지진 예측 연구 역사가 긴 일본이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일본은 1965년부터 지진 예측 연구 계획을 책정, 국가 프로젝트로 추진해왔다.

변곡점이 된 것은 1976년 시즈오카현을 중심으로 한 도카이 지역에서 ‘대지진이 내일 일어나도 이상할 것이 없다’는 도카이 지진설이었다. 1978년 대규모 지진대책 특별조치법을 제정, 총리가 경계 선언을 발표했다. 주민 대피와 교통 통제를 실시하는 체계가 정비됐다.

이후 40년간 해당 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하지 않았고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한신대지진과 동일본 대지진 등 대규모 지진이 잇따랐다. 일본은 과학 지식으로 정확도 높은 지진을 예측하기 어렵다고 판단, 예측을 전제로 한 방재 대응을 포기했다. 2017년부터 이상 현상이 관측될 경우 임시 정보를 발표하고 주민에게 경계를 촉구하는 구조로 변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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