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북한은 오늘이 공휴일"…세계 여성의 날, 어떤 날?

입력 2021-03-08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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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빵을 달라. 그리고 장미를 달라"

1908년 3월 8일,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 1만5000여 명이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였다. 주로 의류업체에서 일하던 이들은 이 같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다.

당시 미국 여성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의 확산에 따라 일터로 나섰지만 열악한 근로 환경 속에서 적은 임금을 받으며 하루 최대 14시간씩 일하는 삶을 살았다. 이들에게는 남성 노동자와 달리 선거권과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도 허용되지 않았다. 참다못해 시위에 나선 이들이 외친 구호에서 '빵'은 굶주림을 해소할 '생존권'을, '장미'는 남성에게만 부여했던 '참정권'을 의미했다. 당시 시위는 이후 '세계 여성의 날'의 시발점이 됐다.

▲1908년 3월 8일 미국의 여성 섬유노동자들이 벌인 시위는 이후 '세계 여성의 날'의 시발점이 됐다. (게티이미지뱅크)

미국 사회당, '여성의 날' 첫 선포…이후 세계적으로 확대

이런 고무적인 분위기 속에서 미국 사회당은 이듬해인 1909년,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인 2월 28일을 '전국 여성의 날'로 선포하고 여성선거권 획득을 위한 집회를 매년 개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10년 8월에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여성회의에서는 클라라 제트킨 등의 발의로 2월 2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자는 결의가 처음으로 채택됐다. 1911년부터는 독일, 오스트리아, 덴마크, 스웨덴 등 유럽의 나라들이 여성의 날을 3월 19일로 지정하고 국제적으로 기념하기 시작했다.

날짜가 명확하지 않던 세계 여성의 날이 지금의 3월 8일로 굳어진 건 러시아 여성들의 대규모 파업이 발단이었다.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가 시작된 날을 양력으로 계산한 것이 1917년 3월 8일이었던 것이다. 1921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제2회 코민테른 여성회의에서는 여성의 날의 날짜를 3월 8일로 통일해 함께 기념할 것을 결의했고, 1922년부터는 3월 8일이란 날짜에 맞춰 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관행이 국제적으로 정착되기 시작했다.

'세계 여성의 날'이 국제적으로 공인된 것은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의 시위로부터 60여 년이 지난 뒤였다. 여성 운동의 물결이 서구 전역으로 확산하자 UN는 1975년을 '세계 여성의 해'로 지정하고,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하기로 했다.

▲8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열린 '세계 여성의 날' 113주년 민주노총 기자회견에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에 첫 행사 개최…2018년 법정기념일 지정

우리나라에서도 오래전부터 '여성의 날' 행사가 개최된 적이 있다.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나혜석·박인덕 등 여성운동가의 주도하에 '국제부인데이', '국제무산(無産)부인데이'라는 이름으로 강연과 집회 등이 시도됐다. 하지만 당시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행사는 강연회나 간담회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고, 상당수는 행사가 열리기도 전에 사회주의 계열 단체라는 이유로 일본 경찰에 의해 저지되고 무산됐다. 당시 사회주의적 성격을 띠었던 '여성의 날'은 해방 이후 반공 이데올로기에 밀려 남한에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국에서 여성의 날이 부활한 건 1975년 UN이 이를 공식 지정한 지 정확히 10년이 지난 시점이다. 1985년 3월 8일 서울 명동에서는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는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개최됐다. YWCA 중강당에 모인 300여 명의 여성은 이날의 감격과 결의를 담은 '민족·민주·민중과 함께 하는 ’8·5 여성운동 선언'을 채택해 여성의 날의 부활을 선포했다. 이후 여성단체와 노동계가 중심이 돼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로 기념해 각종 행사를 열었다.

여성의 날이 우리나라의 공식 법정기념일로 지정된 건 오래되지 않았다. 지난 2018년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과 당시 자유한국당 나경원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양성평등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3월 8일이 비로소 법정기념일인 '여성의 날'로 지정된 것이다.

▲북한 선교 꽃·금붕어 상점에서 꽃을 사는 사람들. (연합뉴스)

러시아·북한·중국 등 공산권 국가는 공휴일…"공산혁명의 시발점"

현재 전 세계 100개국이 넘는 나라가 세계 여성의 날을 국가 차원에서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다. 특히 상당수 옛 공산권 국가는 공휴일로 지정하고 있다. 러시아 공산혁명의 시발점이 1917년 3월 8일 페트로그라드에서 열렸던 여성노동자들의 여성의 날 시위여서다. 이로 인해 공산권에서는 이날이 실질적인 공산주의 탄생일로 여겨지며, 러시아를 비롯한 북한,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및 아프리카의 공산권 국가들도 대부분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공산권 국가들에서는 여성단체들의 기념행사나 시위 등에 국한되지 않고 전 국민들의 봄맞이 축제처럼 여겨지고 있다. 여성의 날을 공휴일로 지정한 러시아에서는 이날이 남성이 여성에게 꽃을 선물하는 날로 알려져 꽃집에는 밸런타인데이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몰린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여성의 날은 다른 공산권 국가들과 달리 여성들만의 공휴일이다. '3·8부녀절'이라고 부르는 중국 여성의 날엔 여성직원들의 경우에만 단축업무가 인정되거나 아예 쉬는 경우도 많다.

북한에서도 '세계 여성의 날'은 공휴일이자 중요한 날로 여겨진다. 북한에서는 매년 3월 8일을 '국제부녀절'로 지정해 축하공연을 열고 기념하고 있다. 올해도 평양 모란봉극장에서는 3·8 국제부녀절 111주년 기념 국립교향악단 음악회가 열리며, 동평양대극장에서는 만수대예술단 음악·무용 종합공연이 예정돼 있다.

북한의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8일 국제부녀절을 맞아 여성의 적극적인 사회 진출을 독려하기도 했다. 노동신문은 이날 1면에 사설을 싣고 "오늘의 전 인민적 총공격전에서 여성들에 대한 당의 믿음과 기대는 매우 크다"며 "광범한 여성들이 사회에 적극 진출해 부강조국 건설에 헌신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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