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병 주고 약 주고

입력 2021-01-20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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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호 IT중소기업부 차장

요즘 미디어ㆍ통신, 특히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의 시선은 ‘디즈니 플러스’에 쏠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콘텐츠 절대 강자인 디즈니 플러스의 한국 상륙이 가져올 여파 때문이다.

통신사는 디즈니 플러스의 국내 파트너사로 선정되기 위한 물밑 경쟁이 한창이다.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 모두가 디즈니 플러스에 제안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통신 3사가 디즈니 플러스와의 협력에 목을 매는 것은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경험칙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LG유플러스는 2018년 넷플릭스와 가장 먼저 협력한 이후 2019년 유료방송 가입자가 증가하는 효과를 봤다. KT도 지난해 넷플릭스와 손잡아 LG유플러스와 마찬가지로 가입자 순증 효과를 거뒀다. 콘텐츠 경쟁력에서 디즈니 플러스가 넷플릭스를 앞선 것으로 평가되는 만큼 통신 3사의 경쟁이 치열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사실이다. 이면에는 발언권이 갈수록 커지는 넷플릭스를 견제하려는 의중도 있으리라 짐작된다.

토종 OTT 업계도 분주하기는 매한가지다. 토종 OTT는 지상파 3사와 SK텔레콤이 합작한 ‘웨이브’, CJ ENM의 ‘티빙’, OTT 스타트업 ‘왓챠’, KT의 ‘시즌’, 카카오의 ‘카카오TV’ 등이 각축전을 벌이는 가운데 콘텐츠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CJ ENM은 최근 JTBC스튜디오의 합류를 발표했다. 양사의 콘텐츠 경쟁력을 결합해 한국을 대표하는 OTT 서비스로 성장시킨다는 포부다. 티빙은 향후 3년간 40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투자해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티빙은 네이버와의 협력도 꾀하고 있다. 2019년 9월 출범 당시 2023년까지 3000억 원 규모의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 유료 가입자 500만 명 확보를 목표로 세운 웨이브는 최대주주인 SK텔레콤과 아마존의 협력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한국판 아마존을 꿈꾸는 쿠팡은 월정액 2900원이라는 낮은 요금을 무기로 OTT 시장에 뛰어들었다. 쿠팡 역시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을 계획하고 있다.

이처럼 글로벌 OTT의 공세에서 살아남기 위해 토종 OTT 기업들이 적자를 감수하며 콘텐츠 확보에 자금을 쏟아붓고 있지만, K콘텐츠의 육성과 글로벌 시장 진출을 꾀하는 정부는 규제 고삐를 늦추지 않고 있어 우려스럽다. 특히 하나도 모자라 부처 간 알력 다툼에 너도나도 규제 카드를 꺼내 드니 OTT 산업 육성의 진의가 있는지조차 의문시된다.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작년 말 3개월간의 트래픽 양을 바탕으로 트래픽 점유율에 1%대에 불과한 웨이브를 ‘서비스 안정 의무 사업자’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 인해 웨이브는 전체 트래픽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구글과 동일 규제를 받게 됐다. 또 문화체육관광부는 법 개정을 통해 OTT의 음악 저작권료를 상향 징수할 방침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최근 비전과 정책과제를 발표하면서 OTT를 시청각 미디어 서비스에 포함하는 법제를 마련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방향은 나오지 않았으나 기존 미디어와 OTT가 서비스 내용상 차이가 없다면 같게 규제할 것을 시사했다. 방통위는 또 방송시장 활성화 정책 중 하나로 OTT에 대한 콘텐츠 제작비 지원 등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소위 병 주고 약 주는 모양새다.

글로벌 사업자에 뒤처지는 토종 OTT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까지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진정 토종 OTT 산업과 K콘텐츠 육성 의지가 있다면 사업자의 경영 의지를 꺾는 과잉 규제는 최소화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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