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코노미] 스태프도 제작비도 없다…넷플릭스 ‘홈메이드’와 코로나 시대 영화 산업

입력 2020-12-31 15: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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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코노미는 넷플릭스와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에 있는 콘텐츠를 통해 경제를 바라보는 코너입니다. 영화, 드라마, TV 쇼 등 여러 장르의 트렌디한 콘텐츠를 보며 어려운 경제를 재미있게 풀어내겠습니다.

(출처=넷플릭스)

스태프도, 배우도, 제작비도 없다. 촬영 장소는 대부분 집이고, 감독 스스로 카메라 앞에 서거나 가족들이 피사체가 된다. 러닝타임은 고작 10분 내외.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그 안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작지 않다. 코로나 시대 격리 중 만들어진 집콕 영화 시리즈, 넷플릭스 '홈메이드'(Homemade, 2020)다.

홈메이드는 세계 각국 17명의 영화인이 지역 봉쇄 혹은 자가 격리를 겪는 와중 그들의 집에서 제작했다. 전문 스태프와 배우의 도움 없이 대부분 감독 혼자 촬영하고 편집하며 만들었다. 미국 LA, 영국 글래스고, 이탈리아 로마, 칠레 산티아고 등 세계 각지의 영화인들이 이름을 올렸는데,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와 영화 '프랭크'의 매기 질렌할 감독도 시리즈에 참여했다.

17편의 작품에는 모두 감독 저마다의 개성이 녹아있다. 공통된 주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와 함께 성장하는 자녀들에게 쓰는 편지부터, 일상이 무너지며 겪는 불면증, 푸드 뱅크에 길게 줄을 선 사람들 모습까지. 세계 각국의 다양한 코로나 일상이 각각의 짧은 단편 속에서 힘있게 울린다.

▲배우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직접 출연하고 연출한 '신경 쇠약'의 한 장면. 낮에도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하는 불면증을 감각적으로 담았다. (출처=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코로나 시대의 어두운 이야기만 담긴 건 아니다. 헤어졌는데도 지역이 봉쇄돼 여전히 같이 살 수밖에 없는 커플의 웃지 못할 사연부터 코로나 격리 중에도 여전히(?) 줌으로 바람피우는 중년의 남성 등. 어두운 상황을 유쾌하게 풀어나가는 위트가 담긴 작품도 있다.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은 파올로 소렌티노의 '밤 끝으로의 여행'이다. 파올로 소렌티노는 '그때 그들'(Loro, 2019), '유스'(Youth, 2015) 등을 만든 이탈리아 출신 영화감독으로, '그레이트 뷰티'(The Great Beuaty)로 2014년 아카데미에서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했다.

영화에서 파올로 소렌티노의 집은 바티칸 시국이 돼 교황과 여왕이 만나는 장소가 된다. 불행하게도 두 사람은 도시 봉쇄가 이뤄지며 바티칸에 갇히게 되는데, 이렇게 갇혀 어떻게 하냐는 교황의 말에 여왕은 이미 94년 동안 갇혀있었다고 답한다. 덧붙여 여왕은 "전 세계인들이 집에 갇혀 자유가 뺏긴 기분을 느끼고 있는데 우린 그게 일상이잖아요"라고 말한다. 그러자 교황이 답한다. "처지가 같진 않죠. 그 사람들의 비좁은 집과 우리 궁전은 천지 차이니까요."

▲테이블 아래에서 이뤄진 영국 여왕과 교황과의 만남. 파올로 소렌티노의 '밤 끝으로의 여행'은 독특한 상상력과 목소리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출처=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코로나19로 올해 영화 산업은 큰 어려움을 겪었다. 드웨인 존슨, 톰 행크스를 비롯한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과 제작진이 코로나에 걸렸고, 이로 인해 작품 제작이 중단됐다. 블록버스터 기대작의 개봉도 줄줄이 연기됐다. 올해 최고의 기대작이었던 '블랙 위도우'는 개봉일이 1년 넘게 미뤄졌다. 블랙 위도우 개봉이 늦춰지며 마동석이 출연하는 '이터널스' 등 마블 유니버스의 다른 작품도 일정 조정이 불가피해졌다.

이 와중에도 용기 있게 개봉한 작품들이 있었지만, 수익은 예전만 못했다. 29일(현지시간) 미 CNBC 방송은 올해 박스오피스 수익이 22억8000만 달러(약 2조4898억 원)로 약 40년간 집계한 수치 중 최저 수준이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는 지난해 114억 달러(약 12조4488억 원)보다 80% 급감한 수준이다.

한국 영화 역시 큰 어려움을 겪었다. 올해 국내 영화시장은 예년과 같은 1000만 영화는 당연히 찾아볼 수 없었고, 100만 영화가 영화계의 주목받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올 한 해 손익 분기점을 넘은 한국 영화는 10편도 채 되지 않았다.

올해 한국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이 본 작품은 '남산의 부장들'로 475만345명 관객을 동원했다. 그 뒤를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와 '반도'가 이었다. 두 작품 모두 코로나가 한창이던 여름에 각각 435만 명, 381만 명이라는 의미 있는 성적을 거뒀다.

영화계에서 눈에 띄는 변화는 넷플릭스의 약진이다. 올해 많은 작품이 코로나로 인해 스크린에 걸리지 못하자, 오히려 넷플릭스 같은 OTT서비스가 주목받았다. 관객들은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영화관을 찾지 않았고, 집에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를 이용해 OTT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홀드백(개봉 이후 온라인 공개까지 필요한 기간) 합의를 이유로 넷플릭스 작품을 상영하지 않았던 CGV와 롯데시네마는 지난달부터 넷플릭스 영화를 상영하기 시작했다. 2017년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반발로 소규모 극장에서만 걸렸던 상황과 몹시 대조적이다.

▲애나 릴리 무어 감독의 '견뎌내기'는 LA의 텅 빈 거리와 함께 케이트 블란쳇의 내레이션을 통해 긍정적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출처=넷플릭스 유튜브 캡처)

코로나 이후 영화는 다시 예전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 포스트 코로나 시대, 많은 이들이 우리 일상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 우려하지만, 그 중에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봉준호 감독은 최근 스페인 일간지 엘문도와의 인터뷰에서 "때때로 내가 얼마나 낙관적일 수 있는지 놀랄 때가 있다"며 "코로나19는 사라지고 영화는 돌아올 것이다"라고 말했다.

홈메이드 시리즈의 마지막을 장식한 애나 릴리 무어 감독의 '견뎌내기' 역시 낙관적 시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감독은 텅 빈 LA 거리를 자전거 타고 누비는 장면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담담히 풀어나간다. 그는 "관점이란 무언가를 바라보는 특정 방법이나 태도를 찾는 것"이라며, 스스로 약하거나 작다고 생각하지 않는 개미처럼 그저 묵묵히 현실을 향해 나아가라고 말한다.

작품의 마지막, 감독은 설령 예전 같은 일상이 사라지더라도 그 사라진 것에 갇혀있지 말라고 조언한다. "우리는 관습과 규범에 따라 살아갑니다. 달력, 시계, 생일, 휴가와 명절, 해피 아워 같은 거요. 하지만 이게 다 없어지면 어떡해야 할까요? 없어진 걸 세고 있나요? 아니면 남은 것을 세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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