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딜레마 빠진 중형 임대주택 정책] ‘시장 안정-주거 약자 보호’ 갈림길 선 임대주택

입력 2020-11-1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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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주택 넓히고 소득 기준도 상향 건설 재원은 공기업 빚으로 충분한 양 확보 못하면 주거 약자 몫 줄어들 우려

정부가 공공임대주택 문호를 중산층에게까지 넓히려 한다. 중산층 주거비 부담을 덜어주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러나 당초 의도와 달리 사회적 약자에게 갈 주거복지 지원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토교통부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달 중 임대주택 확대 방안을 발표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8월 “공공임대주택을 중산층까지 포함해 누구나 살고 싶은 질 좋은 평생 주택으로 확장할 것“이라고 밝힌 지 석 달 만이다. 정부에선 주택도시기금을 지원하는 공공임대주택을 전용면적 85㎡형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현재 중위소득 130%(4인 가족 기준 월 634만 원)인 입주자 소득 상한선도 상향이 유력하다. 이수욱 국토연구원 주택·토지연구본부장은 “중산층을 위한 양질의 공공임대주택이 꾸준히 공급된다면 장기적으로 주거 안정과 주거비 절감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했다.

문제는 재원이다. 공공임대가 확대된다면 그 부담은 대부분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이 떠안을 공산이 크다. LH는 지금도 126조 원이 넘는 부채를 지고 있다. 주택도시기금에서 융자를 받을 순 있지만 2018년 41조 원이던 기금 여유자금 규모도 올 7월엔 34조 원으로 20% 쪼그라들었다.

중산층용 임대주택으로 재원이 분산되면 저소득층 주거 복지에 쓰일 돈이 부족해질 수 있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공공임대주택은 토지라든지 자금이라든지 자원 소요가 많은 사업”이라며 “취약 계층을 위한 임대주택 수요도 충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중산층에게까지 공급할 때냐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해 전국의 비주택(판잣집·비닐하우스 등 주택 요건을 갖추지 못한 거처) 거주자는 96만 명이 넘는다. 현재 임대 기간 10년 이상 장기 공공임대주택이 약 117만 가구인 점을 고려하면 주거 약자를 챙기기에도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거 서울시에서 시프트(shift)란 이름으로 중형 임대주택을 공급했을 때도 비슷한 문제가 생겼다. 해마다 운영 손실이 약 2000억 원씩 발생했다. 적자를 못 버틴 서울시는 중형 시프트 공급을 중단하고 취약층 지원에 집중키로 했다. 전문가들은 중산층용 임대주택이 이 전철을 밟을 가능성을 우려한다.

재원 문제로 공공임대주택이 충분히 공급되지 못하면 임대주택을 두고 중산층과 주거 약자가 제로섬 게임을 벌일 수 있다. 박효주 참여연대 간사는 “과거에도 청년·신혼부부 전용 임대주택 공급을 늘리면서 저소득층 임대 물량이 감소했다”며 “충분한 임대주택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공급 대상만 확대하면 저소득층이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지난해 공공임대주택을 공급받은 사람 가운데 청년·신혼부부는 전년보다 37%(5만3000가구→7만2500가구) 늘었지만 저소득층은 30%(8만1000가구→5만7000가구)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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