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차장
국내 굴지의 전자기업이 최근 이어폰 신제품을 내놨습니다. 해당 회사 SNS에 올라온, 멋진 영상미로 꾸며놓은 소개 영상을 보니 낯선 단어가 여럿 스쳐 지나갑니다.
굳이 되돌려보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좋은 기능을 갖춰서 좋은 소리를 낸다” 정도로 이해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제품 소개 영상을 눈으로 직접 봤음에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비단 기자 혼자만은 아니었습니다.
자동차는 더 심합니다. 자동차 회사의 보도자료를 보다 보면 “스토리텔링 요소를 가미한 버추얼 쇼케이스를 준비한다"고 나옵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주변 사람에게 이 내용을 전달해 봤습니다.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을 동그랗게 뜬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1990년대에는 세기말을 분위기를 타고 젊은 세대를 "X세대"라고 불렀습니다. 소비집단인 젊은 층의 특징을 규정하고, 이들에게 '알파벳' 머리글자를 덧붙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누군가 나서서 특정 시기에 태어난 일들을 “X세대라고 부르자”라며 선동하지 않았습니다. 소비재를 개발하고 생산 판매하는 기업이 판매전략으로 활용하면서 일반화되기 시작한 것이지요.
기업의 홍보와 판매전략이 새로운 단어를 만들고, 특정 국가의 언어와 문화를 바꿔 가는 주체가 된 셈입니다.
어느 언어권에서나 방언은 존재합니다. 하나의 언어권이지만 물리적 단절로 표현 방식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역 단절로 인한 언어 차이보다, 세대 변화에 따른 변화가 더 크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기업 광고와 판매 전략은 언제나 주 소비층을 겨냥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특정 소비층이 원하는 디자인과 기능에 주력하고, 그들이 즐겨 쓰는 단어를 판매전략에 활용합니다. 결국, 세대마다 소비재가 달라지고, 언어와 유행의 차이도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지요.
다만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좋은 반응을 얻어낸 사례도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독일 고급 자동차 회사 BMW는 한국 신차 발표회에 맞춰 책임 디자이너를 함께 보냈습니다.
무대 위에 올라선 그는 복잡한 자동차 공학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아가 "이렇게 디자인한 이유는 바로 이것 때문입니다"라는 친절함도 담았습니다.
주인공은 세계 3대 자동차 디자이너로 추앙받았던 BMW 출신의 ‘크리스 뱅글’이었습니다.
더는 어려운 단어와 꾸밈으로 소비재를 소개하는 방식이 제품의 격을 높이는 것이라고 착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노이즈 캔슬링은 "주변 소음을 줄일 수 있다" 정도로, 신개념 버추얼 신차 쇼케이스는 "컴퓨터를 이용한 가상 현실을 가미한 신제품 출시행사" 정도로 바꿔도 됩니다.
더 많은 소비자에게 제품의 특징과 장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친절함을 베풀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혹시 아시는지 모르겠네요. 제조사들이 “이런 단어를 쓰면 멋져 보일 거야”라며 남발했던 영어 단어 가운데 일부는 문법에도 맞지 않는 이른바 ‘콩글리쉬’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