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17일까지 자기주식 취득 또는 자기주식 취득을 위한 신탁계약 체결 결정을 공시한 국내 코스피·코스닥 상장사는 총 552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 같은 시기의 131곳과 비교해 4.21배 늘어난 수준으로, 이들 기업이 공시한 자사주 취득 예정 금액만 해도 총 4조7306억 원 규모에 달한다.
자사주 취득은 기업이 주가 안정과 주주가치 제고 등을 목적으로 직접 자기 회사 주식을 사들이는 것으로, 회사 이름으로 직접 주식을 매입하는 방법이나 회사가 금융기관과 자기주식 신탁계약을 맺고 간접적으로 매입하는 방법이 있다.
기업은 이를 통해 주가 부양 효과를 볼 수 있고, 간접적으로는 시장에 실적 개선에 대한 자신감 및 책임 경영 의사를 밝힐 수도 있다.
특히 올해의 경우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서 주가가 속절없이 무너진 기업 수장들은 자사주 매입으로 보유하고 있던 지분 감소의 손실분을 보전하는 효과를 본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경우 지난 3월 말 롯데지주 주식 4만7400주를 주당 2만1052원(총 9억8944만 원)에 매입했다. 전날인 21일 롯데지주 주가는 당시보다 51.06%나 오른 3만1800원에 마감했다. 때문에 신 회장이 사들인 주식의 평가액은 이 기간에만 5억516만 원 늘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도 높은 수익을 거뒀다. 정 부회장은 지난 3월 23∼27일(이하 결제일 기준) 현대차 58만1333주, 현대모비스 30만3759주를 장내매수했으며, 공시된 주당 취득 단가를 고려하면 매입액은 각각 현대차 406억 원, 현대모비스 411억 원 등 총 817억 원이다.
현대차와 현대모비스 주가는 정 부회장이 사들일 당시와 비교해 지난 21일 종가 기준 각각 74.08%(6만9793원→12만1500원), 60.39%(13만5294→21만7000원) 올랐다.
김남구 한국금융지주 회장도 지난 3월 23∼24일 회사 주식 26만3000주를 약 86억 원에 매수했다. 김 회장의 평균 매입 단가는 주당 3만2623원이었는데 21일 기준 주가가 5만500원까지 오르며 평가이익은 47억원, 이익률은 54.79%에 달한다.
김재은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자사주 매입의 장점은 배당금 지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연하다는 것으로,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실적이 부진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들은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업의 자사주 매입 공시 시 목표 매입 비율이 높거나 금액이 클 경우, 공시 자체를 기업의 펀더멘털이 양호하다는 시그널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자사주를 매입해 소각하는 상장사도 늘고 있다. 그동안 국내 증시에서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이 자사주 소각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아 주가 부양에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지난 3월 삼성물산은 주주총회를 열고 회사가 보유 중인 3000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4월 24일자로 소각한다고 발표했고, 비슷한 시기 미래에셋대우도 같은 이유로 468억 원 규모의 자사주를 3개월 내로 매입해 소각하겠다는 입장을 공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