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들의 달러 매입 제한으로 타격 줄 수 있어…중국도 보복 수단 있어 실행 가능성은 낮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측근 중 일부가 홍콩 금융허브 지위 근간을 이루는 달러페그제를 약화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홍콩이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주체여서 미국이 직접적으로 페그제를 폐지할 수는 없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가 달러페그제를 공격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미국 재무부가 홍콩과 중국 은행들에 대한 달러 자금 제공을 제한하는 것이다. 악시코프의 스티븐 이네스 수석 글로벌 시장 투자전략가는 “만약 미국이 이 방법을 취하면 홍콩과 중국 은행들의 달러 자금조달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마이클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필두로 미국 국무부 내에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에 정통한 소식통 2명은 “미국 정부 고위관리들이 홍콩에 근거지를 둔 은행들, 특히 HSBC홀딩스를 처벌할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달 성명에서 홍콩보안법 지지를 표명한 피터 웡 HSBC 아시아·태평양 지역 최고경영자(CEO)를 직접 지목하면서 “중국이 그의 충성심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라고 저격했다.
다만 트럼프 정부 내에서도 중국이 아닌 홍콩 은행들과 미국에만 해를 끼칠 것이라고 강력한 반발이 일고 있다. 또 달러페그제 공격 아이디어는 미국 정부가 논의 중인 홍콩보안법 관련 제재 옵션 중에서도 우선순위가 낮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전문가들도 중국이 보복 수단을 충분히 갖고 있어서 트럼프 정부가 이런 위험한 도박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다. 이네스 투자전략가는 “이것은 황당한 움직임인 것은 물론 매우 나쁜 생각”이라며 “페그제에 대한 미국의 직접적인 행동은 채권과 주식을 포함한 미국 자산을 투매하는 등 중국의 보복을 초래할 수 있다. 또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중동 국가들의 페그제 안정도 뒤흔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외환시장에서 8일 달러·홍콩달러 환율도 거의 변동이 없어 이런 시각을 반영했다.
그러나 이런 논의가 진행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홍콩 금융허브 지위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평가다.
앞서 홍콩은 자본유출을 억제하고자 지난 1983년 홍콩달러 가치를 미국 달러에 고정시키는 엄격한 달러페그제를 처음 도입했다. 2005년부터는 이를 다소 완화해 고정환율을 중심으로 일정 범위 안에서 환율의 등락을 허용하고 있다. 만일 환율이 범위를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 홍콩 중앙은행 격인 홍콩금융관리국(HKMA)이 홍콩달러를 사거나 매입하는 방식으로 개입한다.
환율이 달러에 고정되면서 홍콩은 통화정책을 자율적으로 조정할 수 없게 됐다. 예를 들어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조정할 때마다 HKMA도 보조를 맞춘다.
그럼에도 달러페그제는 무엇보다 통화를 비교적 안전하고 쉽게 환전할 수 있게 해서 홍콩의 금융 안전성을 제고했으며 해외 투자자들도 안심하고 홍콩에 돈을 넣어둘 수 있게 됐다. 이는 홍콩이 글로벌 금융허브로 도약한 주된 이유다. 블룸버그는 “정치적 대립이 격화해 실제로 미국이 페그제 약화 행동에 나선다면 자본이 급격히 유출될 것”이라며 “자본흐름이 엄격하게 통제되는 중국 본토와 달리 홍콩은 돈이 무제한으로 유입이나 유출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고 경종을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