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 국부펀드 공공투자펀드(PIF)는 올해 1분기에 미국과 유럽의 유망기업 주식을 70억 달러어치(약 8조6000억 원)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 분석 결과, PIF는 국제유가 급락으로 큰 타격을 입은 에너지주를 비롯해 금융주, 반도체주, 기술주 등을 쓸어 담았다.
PIF는 사우디와 러시아 간 증산 경쟁에다 코로나발 글로벌 수요 급감까지 겹치면서 국제유가가 폭락하자 추풍낙엽 신세를 면치 못한 에너지 기업의 지분을 늘렸다. 올 1분기 영국 에너지 대기업 BP(8억2780만 달러), 로열더치셸(4억8400만 달러), 토탈(2억2200만 달러), 썬코에너지(4억8100만 달러) 주식을 각각 사들였다.
에너지주 외에도 씨티그룹(5억2200만 달러), 뱅크오브아메리카(4억8800만 달러) 등 금융주도 매입했다. 또 페이스북(5억2200만 달러), 디즈니(4억9600만 달러), 시스코(4억9100만 달러), 메리어트(5억1400만 달러), 크루즈 운영업체 카니발(5억 달러),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7억1400만 달러) 등 다양한 분야의 주식을 쓸어 담았다. 또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 반도체 제조업체 브로드컴과 퀄컴, 제약사 화이자, 세계 최대 커피전문점 스타벅스 주식도 각각 8000만 달러씩 늘렸다. 코로나19로 미국과 유럽의 주요 기업 주가가 급락하자 이를 기회로 헐값 쇼핑에 나선 것이다.
사우디가 국제유가 급락에 10년여 만에 최악의 경제난에 직면한 가운데 PIF가 증시 매입 전략을 펼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최근까지 PIF는 증시보다는 사모펀드 투자에 집중해왔는데 성적이 부진했다.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에 450억 달러 투자로 손실을 입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회장으로 있는 PIF는 왕세자가 주도하는 ‘비전 2030’ 계획하에 진행되는 대형 국책 사업의 ‘돈줄’ 역할을 해왔다. PIF 대변인은 주식 헐값 쇼핑과 관련해 “사우디 경제 성장을 견인하면서 장기 수익을 가져다 줄 잠재력을 가진 산업에 투자하는 전략적 기회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WSJ는 PIF의 주식 매입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고 평가했다. 미국 증시는 코로나발 경제 충격파 우려에 3월 23일까지 하락세를 보였다. 이후 주요국의 경기 부양책에 힘입어 반등을 시작했다. 3월 말 이후 디즈니와 페이스북 주가는 각각 13%, 26% 뛰었고 메리어트도 6.6% 올랐다. 반면 글로벌 항공 수요 감소 장기화 우려에 보잉 주가는 19% 하락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