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8월 지라시→12·16대책에 일부 반영… 시장선 "정부, 여론 떠보기"의혹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실효성도 없고 시장의 신뢰마저 잃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뜬소문으로만 취급했던 ‘지라시(사설 정보지)’ 내용이 실제 정책으로 실현된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부동산 대책이 지라시의 꽁무니를 쫓는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이 15일 한 라디오방송 인터뷰에서 주택거래 허가제를 언급한 것과 관련해 부동산 시장과 정치권에서 반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공산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는 비난이 쏟아졌고, 야당은 “국민을 바보로 아는 짓”이라고 힐난했다.
강 수석의 발언이 문재인 대통령(“집값이 많이 뛴 곳은 원상회복돼야 한다”),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강남 가격을 안정시키는 것이 1차 목표”)에 이어 정부의 주택시장 통제 의지를 다시 내비쳤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청와대의 연이은 수위 높은 발언으로 시장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정부 정책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이들의 입에서 나온 발언이 지난주 시장에 나돌았던 지라시 내용을 연상케 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시장에서는 ‘국토부 보도자료 배포 및 백브리핑 계획 알림’이란 제목의 지라시가 떠돌았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급속히 퍼진 이 지라시에는 △초고가 주택거래 허가제 도입 △초고가 주택 범위 12억 원, 고가 주택 범위 9억 원에서 6억 원으로 현실화 △분양가 상한제 지역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문제는 지라시를 더 이상 지라시로만 치부하지 않는 실수요자들의 반응이다. 지난해 헛소문으로만 여겼던 지라시의 일부 내용이 실제 부동산 대책으로 발표된 상황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작년 8월 정부가 민간택지 분양가 상한제에 대한 입장을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시장엔 부동산 대책을 담은 지라시가 나돌았다. 1주택자 대출 규제, 주택담보인정비율(LTV) 30% 하향 조정, 대출 규제 강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당시 시장에서는 “강도가 세다”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국토부도 “사실 무근”이라며 “강경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4개월 후 지라시의 일부 내용은 현실화됐다. 정부가 지난해 말 발표한 12·16 부동산 대책에 1주택자 대출 규제는 ‘시가 15억 원 초과 아파트 주택구입용 대출 금지’로, LTV 하향 조정은 ‘시가 9억 원 초과 20%로 조정’ 등으로 구체화된 채 등장한 것이다.
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떠돈 지라시가 실제 부동산 정책으로 발표될 수 있다는 불안심리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지라시로 시장을 ‘간 보고 있다’는 의심까지 하고 있다.
지라시가 시장을 선동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대책은 ‘뒷북’으로 전락하고 정책 신뢰도는 땅에 떨어진 분위기다. 이미 시장에서는 부동산 추가 대책이 4·15 총선 전후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선(先)지라시, 후(後)정책 발표’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면 부동산 시장의 불확실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한다.
송인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략연구부장은 “지라시의 내용이 정책 입안까지 이어진다면 정책의 신뢰성이 상당한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어떤 정책이 나오든지 정책자의 말을 믿지 않아 시장의 불안이 해소되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부동산 정책은 사라지고 ‘부동산 정치’가 대체하고 있는 상황에 지라시 내용이 정책으로 발표된 것은 정치에서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단과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를 상기시킨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부동산 정책의 신뢰를 제고하기 위한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는 조언까지도 나온다.
안명숙 우리은행 부동산투자지원센터 부장은 “정부가 ‘깜짝쇼’ 방식으로 부동산 정책을 불투명하게 발표하다 보니 지라시가 난무하는 상황이 된 것 같다”며 “정부가 정책 신뢰도를 높이려면 더 투명하고 일관된 방식으로 부동산 대책을 내놔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