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평의 개평(槪評)] 신뢰의 위기

입력 2020-01-07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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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부 차장

2020년 경자년이 밝았다. 새해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소망을 이야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꿈꾼다. 금융당국과 은행의 수장들이 새해 희망을 담아 내놓은 신년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는 ‘신뢰’다. 신뢰의 사전적 의미는 ‘믿고 의지함’이다. 경영컨설턴트 조엘 피터슨은 그의 저서 ‘신뢰의 힘’에서 “신뢰가 ‘단순히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만인 덕목’이 아니라 ‘조직의 생존과 성장을 결정하는 필수 요소’”라고 강조했다.

상호 간 신뢰가 쌓인 곳에서는 걱정할 요소가 줄어든다. 물건을 구매하거나 서비스를 받을 때 서로가 약속을 잘 지킬 것이라는 생각에 낭비되는 자원이 작아지는 것이다. 한 예로 임차인은 전월세 계약 후 보증금 보호를 위해 확정일자를 받는다. 혹시나 모를 경매나 공매에 대비해 대항력을 갖추려는 것이지만 우리 사회의 불신 풍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개별 비용은 작지만 누적된 비용을 보면 천문학적인 수준이다. 저신뢰로 인해 시간과 돈이 드는 것이다.

신뢰라는 가치를 얻기 위해서는 시간, 노력, 비용이 필요하다. 사회가 선진화되고 각 개인의 도덕적 수준이 높을수록 여기에 들어가는 비용도 낮아진다. 신뢰 수준이 높은 곳에서는 어떤 종류의 거래도 불확실성이 낮아 사람들이 안심하고 활발한 경제활동을 할 수 있다. 세계가치조사(WVS)에 따르면 2010~2014년 한국인들의 상호신뢰지수는 조사 대상 59개국 중 23위에 그쳤다.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26.5%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지난해 해외금리연계 파생결합상품(DLF) 사태를 겪으면서 국민들의 금융에 대한 신뢰는 추락했다. 지난해 11월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이 실시한 ‘금융투자자보호 신뢰도’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금융회사들의 투자 권유 행태와 투자자 보호 체계 등에 대한 질문 대부분에서 신뢰도 점수가 100점 만점에 50점 미만으로 나타났다. “금융회사는 금융투자상품의 모든 투자 위험을 투자자들에게 밝힌다”는 문항(43.2점)과 “현재 금융회사의 광고와 마케팅에 대한 법적 책임은 충분한 수준이다”라는 문항(39.9점)의 점수가 특히 낮았다.

금융권에서 한목소리로 신뢰를 외치고 있지만 얼마나 설득력을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달 DLF 사태에 대한 제재를 결정할 금융감독원의 제재심의위원회 개최를 앞두고 있고 외환파생상품 키코(KIKO)에 대한 첫 분쟁조정 배상도 이뤄질 전망이다. 신뢰 회복과 소비자 보호 기류 속에서 어떻게 풀릴지 관심이 쏠린다. 지난해 환매 중단으로 물의를 빚은 라임자산운용의 사모펀드 판매 과정에서 불완전판매 정황도 나오고 있다.

금융은 서로를 믿는 것에서 시작된다. 돈을 빌려주고 투자하고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다는 신뢰가 바탕이다. 신뢰는 지속성장뿐 아니라 생존을 위한 전제조건인 것이다. 올 4월 총선에서도 유권자들은 정당이나 인물에 대한 신뢰로 소중한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올해는 사회 전반에 퍼져 있는 불신이 사라지는 대한민국이 되길 희망해 본다.pe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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