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비이코노미] 영화 '블랙머니'로 본 자본주의의 한계…재조명된 '론스타 스캔들'

입력 2019-11-25 17:34수정 2019-11-25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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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민혁 검사의 역을 맡은 배우 조진웅. 대한은행이 스타펀드에 매각되는 것을 지켜보며 의구심을 품고 사건을 파헤친다. (출처=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대한민국 경제는 우리가 움직여."

영화 '블랙머니'에서 '모피아(재무부 출신 인사들)'의 한 사람인 이광주 전 국무총리(이경영)는 대한은행을 스타펀드에 매각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1997년 외환위기의 여파로 대한은행이 부실화되자 정상화를 위해 외국 자본을 유치하면서다.

영화 '블랙머니'는 미국계 사모펀드 중 헤지펀드인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ㆍ매각한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됐다. 소수의 모피아와 금융자본 권력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외환은행을 어떻게 삼켰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론스타는 2003년 1조3834억 원에 은행을 인수한 뒤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3조9157억 원에 팔았다. 이 과정에서 인수자격부터 친인척 거래 동원까지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김나리(이하늬 분) 변호사는 스타펀드의 법률 자문인이다. 실리적이고 논리적인 인물. (출처=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조차 안 됐다

먼저 따져볼 것은 '인수 자격'의 여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론스타는 인수 자격이 없었다. 론스타가 '산업자본'이기 때문. 금산분리(금융자본인 은행과 산업자본인 기업 간 결합을 제한하는 정책) 정책을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산업자본(기업)이 은행·보험·증권 등 금융자본을 일정부분(시중은행 4%, 지방은행 15%) 이상 소유할 수 없도록 했다.

하지만 론스타는 51%의 지분을 취득했다. 당시 일본에서 자산 규모 2600억 엔 규모의 골프장 130개뿐 아니라 아수엔터프라이즈와 솔라레호텔을 가지고 있었다. 수조 원이 넘는 산업자본이 외환은행을 인수한 것이다.

영화에 나오는 BIS 비율도 마찬가지다. BIS는 국제결제은행이 정한 은행의 최소 자기자본비율을 말한다. 전체 자산에서 자기자본이 일정비율 이상 돼야 한다는 규정이다. 당시 은행법은 외국 자본이 시중은행을 인수하려면 BIS 비율이 8% 이하인 부실금융기관이어야 한다는 예외 조항이 있었고, 론스타는 이를 이용했다.

2003년 7월 이강원 외환은행장은 2003년 말 BIS 비율을 6.16%로 예상한다는 내용의 문서를 금감원에 보냈다. 이에 근거해 금감원은 2003년 9월 26일 론스타의 은행 대주주 자격을 승인했다. 그러나 당시 외환은행이 이사회에 보고한 BIS 비율은 10%였다. 사태가 터진 이후 감사원은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매각될 때, BIS가 8%를 넘었던 것으로 결론 내렸다.

예외 조항에 해당하지 않는데도 론스타에 외환은행 인수 자격을 주기 위해 누군가가 BIS 비율을 고의로 낮췄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당시 론스타의 법률자문을 맡았던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이헌재 전 부총리와 전홍렬 금융감독원 부원장 등이 근무했던 것을 문제 삼은 사람도 있었다.

▲이광주 전 국무총리(이경영ㆍ가운데)는 대한은행 스타펀드 매각을 적극 지지한다. '전 국무총리'지만 경제는 물론 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출처=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계열사 직원부터 모피아 친인척까지…그들만의 세상?

론스타가 외국 자본이라고는 하나 실상은 달랐다. '검은머리 외국인'은 물론 한국의 정·재계 인사들의 친인척도 있었다. 외환은행 매각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던 인사들의 친인척이 적극적으로 투자한 내용을 영화는 자세히 다루고 있다.

2015년 뉴스타파는 외환은행 인수에 사용된 론스타 펀드 자금 중 상당수가 국내 자금이라는 정황이 담긴 자료를 발견해 보도했다.

론스타의 한 계열사 부사장은 60억 원을 투자했는데 그중 자기 돈은 3억9000만 원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론스타가 빌려준 것. 이후 투자금 60억 원은 164억 원으로 불어났다.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의 처조카도 있었다. 김석동 전 위원장은 2003년에는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정책1국장으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해 준 실무자 중 한 사람이었다. 2012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팔고 떠날 때는 금융위원장이었다.

임창열 전 경제부총리의 친딸도 투자에 참여했다. 그의 딸은 당시 직급이 대리였지만 1억2000만 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고, 론스타 펀드에 2억 원 정도를 투자했다.

▲서권영 변호사(최덕문 분ㆍ왼쪽)은 대한은행이 매각되는 것을 반대하는 대표적 인물이다. 구조조정 대상자에 오른 노동자도 대변한다. (출처=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론스타 사태는 한국에 무엇을 남겼나?…구조조정·ISD

외국 자본의 유입은 구조조정을 부른다. 인력 구조조정과 자산 매각으로 얻은 이익은 주주 배당으로 돌아간다. 지분을 들고 있는 외국 자본과 검은머리 외국인의 배를 불리는 것이다.

외환은행은 론스타에 매각된 후 1000명에 달하는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밝혔다. 350명으로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으나 목표치에 미달하자 주택담보대출이나 카드 업무를 취급하는 '특수영업팀'으로 50명에 이르는 인력을 발령냈다.

노동자는 구조조정을 당해 직장을 잃었지만, 이 사태를 책임진 사람은 없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임으로 거론되는 김진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적이다. 김 의원은 당시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를 승인해준 경제부총리다.

약탈경제반대행동은 22일 성명을 내고 "당시 검찰 수사는 론스타 측의 로비 대상자 중에 김진표가 있었음을 밝혔다. 그런데도 제대로 수사받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한마디로 무책임한 고위 관료였고, 정치인이다. 그런 무책임한 자가 국무총리가 된다면, 향후 국정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비판했다.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도 진행되고 있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정부의 방해로 매각이 지연돼 손해를 봤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외환은행 인수 뒤 2007년 HSBC에 팔려고 했지만, 정부가 승인을 미뤄 무산됐다.

론스타는 한국 정부의 매각 시점 지연과 차별적 과세, 가격 인하 압박으로 손해를 봤다고 주장한다. 소송액은 5조 원에 이른다. 소송가액이 5조 원이나 돼 정부도 거액의 소송비를 지출하고 있다. 2013년부터 3년 동안 239억 원이 들어갔다. 국민의 세금이다. 소송에서 지면 세금이 더 들어간다.

▲스타펀드는 정ㆍ재계 인사와 대형로펌이 연루된 거대 사건이다. 검찰도 쉽게 움직이지 못한다. (출처=영화 '블랙머니' 스틸컷)

◇"끝나지 않은 사건, 잊히면 안 돼"

'이 사건은 진행 중이며, 지금까지 구속된 사람은 없다.' (영화 ‘블랙머니’의 엔딩 자막)

영화는 자본주의의 한계를 꼬집는다. 권력을 가진 소수가 '밀실 담합'으로 은행을 외국 자본에 넘기고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이익을 취했다. 평범하게 일했던 다수의 노동자는 길거리에 나 앉았다. 그런데도 구속되거나 책임을 진 사람은 없다.

정지영 감독은 최근 '블랙머니' 언론시사회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어려운 경제·사회 비리 고발 영화다. 그래서 설득력 있고 재밌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며 "관객이 어떻게 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관객이 많이 와서 공부를 해갔으면 좋겠다"라는 말로 '론스타 스캔들'이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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