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세상 읽기] ‘비정성시(悲情城市)’의 대만, 그리고 홍콩

입력 2019-11-22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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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아무리 명작이지만 30년 전 영화를 다시 꺼내 보기는 쉽지 않다. 세상은 볼 만한 혹은 봐야 할 작품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먼지 묻은 DVD 케이스를 열고 영화 한 편을 봐야만 했다. 연일 긴장되는 뉴스를 보내고 있는 홍콩의 소식을 들으면서 대륙과 섬 사이의 끈질긴 갈등과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역사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름하여 비정의 도시, 영화 ‘비정성시’다.

대만 뉴웨이브의 거장인 ‘후 샤오시엔’이 영화 ‘비정성시’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 때가 1989년. 대만에서 40여 년간의 계엄령이 해제된 해가 1987년이니 이른바 대만의 민주화가 막 시작될 즈음이었다. 영화는 2·28 사건을 배경으로 한 가족이 거대한 역사의 굴레에서 어떻게 상처받고 소멸되는가를 진중하게 다뤄내고 있다. 러닝타임만 무려 157분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거해 랴오둥반도와 타이완(대만)을 일본에 할양한다. 그러나 일본은 서양의 견제로 랴오둥반도를 다시 토해냈고 대신 타이완에 일본총독부를 두고 조선에서와 같은 식민통치를 자행한다. 그리고 1945년, 해방이 되자 타이완에 본토의 국민당이 해방군처럼 들어온다. 영화는 라디오에서 일제로부터 해방을 알리는 소식이 흘러나오면서 시작하고 한 가족의 비극도 함께 시작한다. 원래부터 살고 있던 타이완의 원주민과 국민당을 등에 업고 들어온 외부인 간의 불협화음은 상상을 초월했다. 극심한 부패와 무능의 국가권력은 사소한 반항과 저항에도 민감하다. 무려 3만 명의 내지인을 살해한 국민당의 만행은 이후 1999년에 이르러서야 대만총통의 사과로 일단락되었다.

▲비정성시

국가권력으로 자행되는 수많은 폭력과 학살, 제노사이드는 남의 얘기만이 아니다. 우리 역시 4·3 제주, 10·17 여순, 한국전쟁, 5·18 광주를 겪으면서 아직도 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한 부분이 존재한다. 가파르게 전개되는 홍콩 시위가 시가전 형태를 띠면서 위험수위에 육박하고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홍콩이 다시 ‘비정한 도시’가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란다. 박준영 크로스컬처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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