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맡은 재판부가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하는가”며 이례적인 당부 사항을 전달했다.
서울고법 형사1부(재판장 정준영 부장판사)는 25일 이 부회장에 대한 뇌물 등 혐의 파기환송심 첫 공판을 진행했다.
이날 정 판사는 “공판을 마치기 전에 몇 가지 사항 덧붙이고자 한다”며 “다만 파기환송심 재판이 시작된 지금 이 시점으로서는 이 사항이 재판 진행이나 재판 결과와는 무관함을 먼저 분명히 해둔다”고 말했다.
이어 “이 사건 수사와 재판을 위해 많은 국가적 자원이 투입됐고, 이 사건에서 밝혀진 위법행위가 다시는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국민적 열망도 크다”며 “그러나 몇 가지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삼성그룹이 이 사건과 같은 범죄를 다시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정 판사는 “첫째, 이 사건은 삼성그룹 총수와 최고위직 임원들이 계획하고 가담한 횡령 및 뇌물 범죄이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실효적, 실질적이고 효과적인 기업 내부 준법감시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삼성그룹 내부에서 기업 총수도 무서워할 정도의 실효적인 준법감시제도가 작동하고 있었다면 이 법정에 앉아있는 피고인들뿐 아니라 박 전 대통령 등도 이 사건 범죄를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정 판사는 “둘째로 이 사건은 대기업집단 재벌 총수의 지배력 강화를 위해 저지른 범죄”라고 짚었다. 정 판사는 “모방형 경제모델로 국가발전을 주도한 재벌체제에는 과도한 경제력 집중과 일감 몰아주기 등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고, 우리 국가 경제가 혁신형 모델로 발전하는 데 장애가 된다는 경고음이 들리고 있다”며 “엄중한 시기에 재벌 총수는 재벌체제의 폐해를 시정하고, 혁신경제로 나아가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정 판사는 “마지막으로 이재용 피고인에게 당부드린다”며 “어떠한 재판 결과에도 책임 통감하고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심리에 임해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심리 중에도 당당히 기업 총수로 해야 할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해주시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정 판사는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당시 만 51세 이건희 총수는 낡고 썩은 관행을 버리고 사업의 질을 높이자며 이른바 삼성 신경영을 선언하고 위기를 과감한 혁신으로 극복했다”며 “2019년 똑같이 만 51세가 된 이재용 삼성그룹 총수의 선언은 무엇이고, 또 무엇이어야 합니까”라고 마무리했다.
이 부회장은 정 판사를 바라보며 정중히 고개를 끄덕이는 등 경청했다. 정 판사의 마지막 당부에는 고개를 깊이 숙여 대답하기도 했다.
한편,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유·무죄 판단에 대한 심리는 11월 22일, 양형 판단에 대한 심리는 12월 6일에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