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연 금융부 기자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튀어나온다. 온갖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거친 말을 쏘아댄다. 운이 나쁘면 침까지 튄다. 당장 제보자를 밝히지 않으면 기자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세다. 하지만 기자는 입을 열 수 없다. 언론인으로서의 사명감, 제보자를 지켜야 한다는 정의감, 독자들과의 신뢰. 이런 번지르르한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단지, 범죄자가 되고 싶지 않다.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신고자의 인적사항이나 특징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거나 공개해선 안 된다. 신고자의 신분을 공개하는 경우 최대 징역 5년에서 5000만 원 상당의 벌금이 부과된다. 신고자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질문자도 형사 처벌 대상이다. 공익신고자 보호조치를 어기면, 최대 징역 3년에서 3000만 원의 벌금을 맞는다. 모두가 불행해지지 않으려면 제보자를 묻지 않고, 누구라고 대답도 않는 것이다.
모두가 행복한 유토피아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한 조직의 부정부패와 불법행위를 기획시리즈로 보도했다. 조직의 최고 책임자는 매우 화가 났다. 공식 회의에서 제보자를 찾아낸 뒤 그를 해고할 것이라며 언성을 높였다. 거대 로펌 변호사도 선임했다. 제보자를 내부정보 유출 혐의로 고소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공익신고자 보호법은 신고자에게 공익신고를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줄 수 없다고 명시한다. 불이익 조치를 내릴 경우 신고자에게 발생한 손해의 3배 범위까지 배상해야 한다.
지난해 5월부터는 공익신고 대상이 확대돼 채용절차 위반 행위도 공익신고가 가능해졌다. 금융권을 포함해 채용비리로 몸살을 앓았던 기업들을 긴장시킬 수 있게 됐다. 그럼에도 제보자를 끈질기게 추궁하는 사람 때문에 공익신고자는 위축된다. 조직을 감시할 수 있는 강력한 장치가 무력화된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아주 간곡하게 부탁드린다. 제가 만났던,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모든 취재원 여러분, 제발 신고자를 묻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