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업계 하드웨어 시장 포화에 콘텐츠 사업 출사표 잇따라
스트리밍 전성시대다. 1998년 고작 30명의 직원을 데리고 세계 최초 온라인 DVD 대여 서비스를 시작한 넷플릭스가 2007년 동영상 스트리밍 시대를 연 이후 최근 몇 년 전까지 감히 도전장을 던지는 기업은 없었다. 전통 미디어 업계와는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다르고, IT 업계는 애플 ‘아이폰’으로 대표되는 디바이스 혁신에 취해 콘텐츠 사업은 등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넷플릭스는 스트리밍 서비스 업계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하드웨어 시장이 혁신 가뭄에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기존 IT 업계가 새로운 먹거리를 모색하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환경이 됐다. 이에 콘텐츠 사업에 시선이 집중되면서 자금력과 기술력을 갖춘 글로벌 기업들이 넷플릭스가 거의 장악하고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기업들로서는 고민이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애플은 3월 25일 할리우드 스타들을 대거 동원해 ‘빅 쇼’를 열었다. 이미 기존 강자들이 존재하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사업 진출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아마존닷컴의 ‘프라임비디오’, 훌루, ESPN 플러스, AT&T 산하 워너미디어, 월트디즈니, 케이블TV 업체 컴캐스트 산하 NBC유니버설, 그리고 넷플릭스. 이들 사이에서 과연 애플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파이 하나를 여럿이 쪼개 나눠 먹어야 하는 형국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전략도 제각각이다. 넷플릭스는 최근 미국에서 네 번째 가격 인상을 단행했다. 훌루는 TV 프로그램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 이용료를 올리는 대신 기본료는 인하했다. 아마존과 애플은 독자 콘텐츠 제작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 디즈니는 연내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개시할 예정이며, 디즈니와 폭스의 콘텐츠 사업 인수를 놓고 경쟁하다 패한 컴캐스트는 2020년 예정인 광고형 무료 스트리밍 서비스로 반격을 꾀한다.
유료 TV를 해지한 소비자는 기존의 케이블 이용료로 여러 개의 동영상 서비스를 시청할 수 있다. 케이건, S&P글로벌마켓인텔리전스에 따르면 평균적인 소비자는 동영상 이용료로 월 90달러 이상, 여기에 고속 인터넷 접속료 57달러를 지불하고 있다. 소비자가 케이블TV를 해지해 90달러를 절약하게 되면, 아마존의 프라임 비디오(월 8.99달러), 넷플릭스(13달러), 훌루+라이브TV(44.99달러) 등을 이용해도 추가로 서비스를 시청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마지드리서치가 지난해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동영상 스트리밍을 이용하는 소비자는 한 달에 총 38달러를 내고 여러 가지 서비스를 시청할 수 있음에 긍정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평균 6개의 서비스를 이용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해 4분기 시점에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 가입자 수는 5850만 명. 2위는 디즈니 산하에 들어간 훌루로 2520만 명이다.
마지드의 디지털 분석·전략 담당 수석 부사장인 앤드루 헤어는 “현재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평균적인 소비자는 1~2개의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를 추가할 여유가 있을지 모르지만 소비자가 낼 수 있는 금액은 조만간 한계에 도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매튜 공 미디어 기술 전문 애널리스트는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아마존의 프라임비디오와 애플의 TV플러스는 확실한 강점에 의해 지원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의 경우, 애플TV 애플리케이션은 수백만 대의 아이폰에 설치될 것으로 보인다. 공 애널리스트는 “애플과 아마존은 스트리밍에 자금을 쏟아부어 계속 주력하면 성공은 거의 확실하다”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월마트가 올해 초 스트리밍 서비스를 포기하기로 한 건 현명한 결정이라는 평가다. WSJ는 스트리밍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백기를 든 기업이 더 나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최후 승자가 되더라도 승리감에 취해 있을 수는 없다는 지적이다. 차세대 이동통신 ‘5G’ 도입으로 인터넷 서비스 가치가 하락하면 콘텐츠 제공자의 가격 결정력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