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는 연초 경제활력 제고를 강조하던 문 대통령이 국민연금에 적극적인 권리 행사를 주문하자 크게 당황하고 있다.독립성 없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독이 든 성배라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금처럼 60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수준의 자산을 주무르며, 대기업들의 지분을 10% 안팎으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입지다. 게다가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 역할을 보건복지부 장관이 맡고 있다.
연금을 통해 기업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 우려가 제기되는 이유다. 독립행정법인으로 정부와 분리돼 있는 세계 최대 연금인 일본 GPIF, 스튜어드십 코드를 ‘자율적’ 규범으로 규정짓고 있는 미국, 영국 등과 대조되는 상황이다.
재계 한 관계자는 24일 “그간 독립성에 대한 우려가 많이 나왔는데, 이게 결국 어제 대통령의 말로 확인이 된 것 같다”고 우려했다.
4대 기업 관계자 역시 “대통령의 발언은 국민연금의 정치적 독립성을 훼손할 수 있는 상당히 위험한 수위의 발언으로 판단된다”며 “기업 자율성이 줄고 경영 간섭이 노골화하는 계기가 될까 상당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손경식 경총 회장도 22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국민연금의 한진그룹에 대한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방침과 관련, “상당히 걱정스러운 시각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에 대해 “원칙이 분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일시적으로 일어난 문제를 가지고 이야기할 것인지, 아니면 장기적으로 기업 경영을 얼마나 잘해오고 있는지도 살펴봐야 한다”며 “(국민연금의 결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야권 역시 대통령의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행사 발언과 관련 ‘연금 사회주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국민들의 노후보장 수단인 국민연금이, 비전문 정치인을 이사장으로 보내는 지금 정부 아래서는 정권의 집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은 아날 비상대책위원회의에서 “공적연금의 정치적 중립성이 보장되지 않은 우리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는 국민의 집사가 아닌 정권의 집사 노릇이 될 수 있다”며 “국민연금의 독립성 보장 노력도 없이 갑자기 스튜어드십코드 꺼낸 것 자체가 정권의 집사 노릇 가능성을 크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경상 대한상의 경제조사본부장은 “독립성 이슈도 중요하지만 스튜어트십 코드가 처음 발동되는 것이기 때문에 발동의 요건과 기준 등을 잘 만들어야한다고 생각한다”며 “어떤 것을 주주가치 훼손이라고 보는지, 발동을 하게될 경우 어떤 방법이 맞는 건 지, 대상 기업 등에 대한 기준과 판단절차 및 내용 등을 잘 갖춰놓아야 합리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