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런 일은 비단 국회 세미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정부나 각종 공공기관 주최 세미나에서도 인사말만 하고 잠시 자리에 앉았다 일어나거나, 심지어 미리 준비해둔 지정석에 앉지도 않고 바로 나가 버리는 정부 관계자를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가?
한번은 국회의원들의 긴 인사말 퍼레이드가 끝나고 필자의 발제가 시작됐는데, 국회의원 한 명이 뒤늦게 도착해 그날 행사를 주관하는 의원 옆에 앉았다. 이미 발제가 시작된 지 한참 지났는데도 행사 주관자인 의원은 필자에게 눈을 찡긋하면서 발표를 잠시 중단하고 방금 들어온 의원에게 인사말을 할 수 있도록 배려해 달라는 취지의 신호를 보냈다.
이미 밀물과 썰물을 경험한 필자는 이를 무시해 버렸다. 그랬더니 보좌관이 단상에 올라와 쪽지를 전달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잠시 인사말을 할 수 있도록 발표를 중단해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발표를 중단하기 어려웠을 뿐 아니라, 솔직히 그럴 마음이 없어 코앞에 앉아 있는 의원들에게 눈길을 주지 않고 발표를 계속했다. 발표 중에 슬쩍 보니 행사 주관자인 의원은 좌불안석이었고, 연단에 설 기회를 갖지 못한 의원은 표정이 일그러지더니 잠시 후 의자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세미나에 참석하는 정부 고위 공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장·차관은 고사하고 실·국장만 해도 자리를 끝까지 지키는 경우는 드물다. 몇 해 전 독일의 어느 대학에서 필자가 속한 대학과 공동 주최한 세미나에 참석한 적이 있다. 독일 측에서 보내온 세미나 일정을 보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이틀간 진행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양교에서 각기 3명씩 6명이 발제자로 나서는데 설마 그 긴 시간을 세미나만 할까 생각했다. 형식상 일정을 여유롭게 잡아놓고 남은 시간은 관광 비슷한 것을 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마저 했다.
그런데 이틀 동안 점심시간과 오후 휴식시간을 제외하고는 정말 세미나만 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독일 측 교수들과 대학원 학생들 중에 이틀간 자리를 뜨거나 들락거리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이 경험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국내 학회에 참석할 때에도 피치 못해 일찍 일어나야 하는 경우에는 아예 참석하지 않거나, 참석할 경우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키려는 습관이 생겼다. 사실 이렇게 치열한 세미나를 접해보면 발표자 입장에서는 어지간히 준비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청중 입장에서도 듣는 자세가 달라진다.
국회, 정부, 그밖에 공공기관 세미나의 구태의연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알맹이 없는 비슷한 세미나가 너무 많이 열리기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마치 자리를 먼저 떠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자리에 끝까지 남아 있으면 한가한 사람으로 취급될까 두려워하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실제 장·차관이 자리를 뜨면 실·국장이 이어서 뜨고 나중에는 과장이나 사무관만 남아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래놓고 마지막으로 장관을 대신해서 과장이나 사무관이 “오늘 의미 있는 논의가 많았는데 꼭 장관에게 전달하여 정책에 반영하도록 하겠다”는 다짐으로 끝을 맺는다.
세미나 장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고 메모하는 국회의원, 장·차관, 실·국장의 모습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