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종의 서킷브레이크] 디지털 포렌식 도입 누구를 위한 것인가?

입력 2018-10-15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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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부 차장

한국거래소가 11개 코스닥 상장기업의 폐지를 결정한 것과 관련해 기업과 임직원은 물론 소액주주들의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상장 폐지 관련 재감사 제도에 대한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거래소는 5년 전 소액주주들의 피해 구제를 위해 회계법인으로부터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한 상장사들이 재감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도입했다. 특히 올해부터는 투명성 강화를 위해 디지털 포렌식까지 도입했다.

디지털 포렌식은 각종 저장 매체와 인터넷상의 디지털 정보를 분석하는 조사 기법으로 보다 투명하게 회계감사를 진행하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 조사 기법으로 인해 소명할 수 있는 기회마저 사라지게 됐다며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이들 코스닥 상장사는 2017년 감사보고서에 외부감사인으로부터 범위 제한 등에 따른 ‘의견거절’을 받고 개선 기간을 부여받았지만, 최종 기한인 9월 21일까지 재감사보고서를 내지 못하거나 ‘적정’ 의견을 받지 못해 사실상 상장폐지 결정을 받았다. 이들 기업에 통보된 시점은 9월 19일이다. 불과 3거래일 만에 재감사를 받아 다시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만 하는 처지에 몰렸던 셈이다.

문제는 코스닥 상장규정 개정으로 올해부터 외부 회계감사에 도입된 디지털 포렌식 때문에 재감사가 늦어지게 된 점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관련 기업들은 디지털 포렌식의 경우 개선 기간 대부분이 소요돼 재감사 착수가 지연되면서 물리적으로 감사보고서 제출이 불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물론 기업의 일방적인 주장일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포렌식은 투명한 회계 감사와 더불어 소액주주들의 입장까지 고려하여 도입한 제도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개선 기간에 불만을 품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디지털 포렌식 비용만 수십억 원에 이른다. 기업들의 볼멘소리가 쏟아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이 제도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회계법인뿐이다. 일각에서는 비용이 너무 커서 차라리 상장폐지하는 것이 이득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의견거절을 낸 회계법인이 그대로 재감사를 맡도록 하는 제도 역시 문제다. 이들 회계법인이 재감사를 진행하면서 받는 비용은 본감사보다 많게는 수십 배가 더 많다. 그렇진 않겠지만 현행 제도상 회계법인이 재감사에서 일방적으로 의견거절을 내거나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회계법인의 요구대로 비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런 갑의 위치에 있는 회계법인을 상대로 디지털 포렌식이라도 해서 살아 남기 위해 또다시 수십억 원의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얘기다. 누구를 위한 제도인지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투명한 회계야말로 자본시장에서 꼭 필요한 요소다. 하지만 지금의 재감사 제도는 자칫 회계법인만을 위한 제도로 전락하면서 구설에 오를 수 있다. 보다 객관적일 수 있는 평가시스템을 구축해 기업은 물론 소액주주 모두 이해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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