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세’, 웬만해선 골초·술꾼 못 막아...못 끊는 빈곤층만 쥐어짠다

입력 2018-07-27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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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담배 가끔 하는 사람이 더 가격 변동에 민감...빈곤층일수록 술·담배·당류 섭취 경향 높아 죄악세 높을수록 ‘역진세’

▲죄악세의 억제 효과. 각 상품군 가격 1% 인상 시 집계된 판매 감소 정도. 단위 %. 위) 미국. 판매 감소율. 위에서부터 장거리 국제선 비행기값. 외식비. 영화관람비. 탄산음료. 육류. 술. 생선. 담배. 커피. 소금 순. 아래) 영국. 주 당 술 구매량. 위에서부터 7병 미만. 7~14병. 14~21병. 21~35병. 35병 초과.
“코와 뇌, 폐를 망가뜨리는 검은 악취” 17세기 영국 왕 제임스 1세는 담배를 이렇게 표현하며 담배수입세를 4000% 인상했다.

수 세기 전부터 국가들은 특정한 이유로 특정 제품에 고율의 세금을 부과했다. 현대 복지 국가들 역시 일명 ‘죄악세’라는 이름으로 술과 담배, 설탕 등 제품에 높은 세율을 매기고 있다. 정부로서는 공공의 건강도 지키고 유용한 세원도 확보하는 일거양득의 정책일 수 있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그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전문가들을 인용해 죄악세가 기대만큼 효용이 크지 않다는 점을 짚었다. 웬만한 수준의 죄악세로는 애연가와 애주가들을 금연·금주로 이끌기 힘들고, 이들 중 상당수가 빈곤층에 해당하기 때문에 과도한 세율은 오히려 빈곤층만 쥐어짜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에서 비만율이 가장 높은 헝가리는 2011년 설탕과 소금이 많이 들어간 식료품에 높은 세율을 부과했다. 이후 프랑스와 태국, 영국, 아일랜드 등 여러 국가도 설탕세를 도입했다.

그러나 효과는 미미했다. 사람들이 설탕세를 도입하지 않은 인근 도시나 국가로 몰려가 상품을 구매하면서 오히려 풍선효과만 발생했다. 특히 술과 담배는 중독성이 높은 상품인 탓에 단순한 가격 변화로 수요가 급등락하지 않았다. 경제학자들에 따르면 이 상품군의 가격이 1% 올랐을 때 판매량은 0.5% 줄어드는 데 그쳤다. 죄악세는 특히 애연·애주가에게 효과가 없다. 영국의 싱크탱크 조세연구협회(IFS) 연구에 따르면 술과 담배를 가끔만 접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가격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비교적 쉽게 선택을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바탕으로 IFS는 일명 골초와 술꾼들을 특정 겨냥해서 세금을 무겁게 부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빈곤층에 속한 계층일수록 담배와 술, 단 음식을 소비하는 경향이 높아 오히려 역진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죄악세의 핵심은 빈곤층을 더 빈곤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건강에 해로운 상품을 더 비싸게 만들어 접근 유인을 억제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빈곤층일수록 소비성향이 높은데 이들과 가까운 상품에 붙는 세금이 늘어날수록 더 힘들어지는 건 빈곤층일 수밖에 없다.

죄악세에는 두 가지 목적이 있다. 하나는 공중보건을 해치는 행동을 억제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러한 행동이 사회 전반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한 징벌이다. 죄악세 찬성론자들은 흡연과 비만으로 인한 환자들을 위해 정부가 더 많은 지출을 해야 하므로, 징벌적 성격의 고세율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죄악세는 유용한 세원이자 사회에 이로운 방향으로 쓰일 수 있다. 영국 정부는 술과 담배에 대한 죄악세를 통해 각각 193억 달러, 65억 달러를 거둬들였다. 미국 필라델피아는 설탕세를 걷어 지역 학교와 공원, 도서관 운영에 투자했다.

그러나 이코노미스트는 이러한 정책연구들이 흡연 등의 행위가 일으키는 경제적 비용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한다. 건강이 좋지 않은 사람들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정부 지출이 늘 수 있지만, 다르게 보면 이들은 건강상 이유로 조기 사망할 확률이 높다. 따라서 최소한 연금에 들어갈 미래 지출에서 어느 정도 상쇄된다는 것이다. 다만 이코노미스트는 과도한 음주의 경우 돈의 문제를 떠나 음주 범죄라는 또 다른 사회적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다른 식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죄악세가 실제로 공중건강을 향상하고 시민들이 좀 더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독려할 수 있다. 그러나 흡연자 대부분은 건강에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금연에 실패한다. 이코노미스트는 개인은 선택의 자유가 있으며, 선택에 의한 책임도 궁극적으로 개인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철저한 편익 분석을 통해 정부가 책임져야 할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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