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정부 정책이 일관되면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입주권을 내다 팔지 않는다. 재개발이 완성단계에 이를수록 가격은 올라가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때로 재개발을 촉진한다는 명분으로, 또 때로는 투기과열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정부가 수시로 이런저런 변덕을 부린다. 그리고 그때마다 가격이 올랐다 내렸다 하며 이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특히 정부의 부정적인 조치로 가격이 내려갈 때 이들의 불안은 극에 달한다. 그때마다 입주권은 재정적 여유가 있는 외부 투자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게 되고, 개발이익 또한 그 입주권을 따라 넘어가게 된다.
입주권을 팔고 세입자로 내려앉은 원주민은 자신이 판 입주권이 몇 배, 몇 십 배 오르는 것을 지켜보게 된다. 그 심정이 어떠하겠나. 그뿐인가? 그렇게 해서 큰돈을 번 외부 투자자들을 보는 보통 사람들의 마음은 또 어떻겠나. 너나없이 재개발 시장에 뛰어들겠다고 나서지 않겠나. 이래저래 세상은 그만큼 더 어지러워진다.
잘못된 일일까? 가상화폐와 관련된 정부의 대응을 보며 그때 재개발 지역에서 느꼈던 그 허탈감을 다시 느낀다. 당장에 청와대와 기획재정부, 심지어 법무부까지 나서서 한마디씩 하는 소리에 가상화폐와 그 관련 주식이 심지어 하루에 20~30%씩 올랐다 내렸다 한다.
누가 얻고 누가 잃을까? 두말할 필요 없다. 재정적 여력과 정보력이 큰 사람은 여유를 갖고 대응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안달복달하는 가운데 매매 시점을 놓칠 것이다. 정부가 원했건 원하지 않았건 이미 그런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우선 첫째, 더 많은 사람이 투기성 투자를 할 것 같기 때문이다. 국민이 믿고 움직일 만한 특별한 산업정책이 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노동시간 단축과 법인세 인상 가능성 등 기업가 정신과 투자 마인드를 약화시킬 변수들이 산재한다. 여기에 유동성은 넘치는 상황, 돈이 투기성이 높은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화폐 쪽으로는 ‘없고 힘든 사람들’이 더 많이 뛰어들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이나 그림 등 다른 재화에 비해 비교적 쉽게, 또 적은 돈으로도 뛰어들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나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 힘든 상황이라 더욱 그렇다.
둘째, 정부가 제대로 대응해 주었으면 좋겠지만 이 또한 기대하기 어렵다. 오락가락하며 ‘없고 힘든 사람들’을 ‘죽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이다. 달리 그렇게 느끼는 것이 아니다. 가상화폐 그 자체의 의미와 이에 대한 관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사회경제적 변화와 기술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다.
며칠 전 있었던 법무부의 거래소 폐쇄 관련 발표는 정부의 정책 역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다. 경제와 돈이 글로벌 차원에서 어떻게 연결되고 있는지, 또 개인과 개인 간의 거래가 가능한 기술 환경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상식조차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어제 있었던 정부의 ‘개인 책임’ 발언, 즉 손실을 보게 되면 이는 전적으로 투자자 개인의 책임이라고 한 부분은 더욱 그렇다. 아니, 투기가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그로 인한 손실은 전적으로 개인의 책임이다? 이런 자세로 도대체 무슨 문제를 제대로 풀 수 있을까?
그래도 어쩌겠나. 정부를 믿어야지. 그래서 말한다.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스스로의 정책 역량이 어느 정도 수준인지 고민해 주었으면 한다. 오락가락 행보로 없고 힘든 사람들 더욱 어렵게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아울러 또 한마디. 직접이든 간접이든 모든 책임은 정부에 있다. 세상의 어떤 정부가 감히 ‘잘못되는 경우 그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고 말하던가? 어이없는 태도도 이제 그만, 더 이상 그러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