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리콜!’ 와중에도 “제조사 아직 몰라”
삼성전자가 지난 24일 과열로 녹아내린 자사 노트북 배터리의 공급업체가 누구인지 아직 명확한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또 최근 일련의 배터리 사고를 계기로 리튬이온배터리 위주로 이뤄진 우리 업체들의 전지 개발 방향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문제의 배터리는 이미 1년 전에도 비슷한 사고를 냈다. 지난해 2월 초순경 'Icewall'이라는 ID를 가진 한 네티즌은 "회사에서 윈도 프로그램을 포맷하던 중 삼성 노트북 센스 SP10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폭발했다"는 내용의 글을 동영상과 함께 인터넷에 공개했다. 'Icewall'은 당시 자신의 블로그에 "삼성서비스센터에서 제품을 회수해 갔고 다른 네 개 모델 중 하나를 고르라고 했지만 사양이 맘에 안 들어 거절했더니 얼마 뒤 노트북 가격과 책상 가격을 그냥 돈으로 보내주겠다고 했다"며 "다른 배터리들도 이런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삼성이 너무 안이하게 대처하는 것 같다"고 적었다. 이 글과 동영상은 최초 게재됐던 올블로그닷컴이나 심지어 해외 동영상 사이트인 유튜브에서조차 삭제됐다.
당시 삼성전자는 이 글이 인터넷 카페나 블로그 등을 통해 확산되자 그 달 28일에 가서야 "서비스센터에 관련 사고가 접수돼 조사중"이라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당시 "배터리가 가열되면서 배터리를 감싸고 있던 플라스틱 팩이 녹아내렸으나 폭발하지는 않았다"며 "지난 2002년 상반기 출시 제품이며 배터리는 일본 도시바 것으로 동일 배터리가 장착된 삼성전자 노트북이 약 10만대 이상 출고됐는데도 사고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단발성 사고로 결론 낸 것이다.
이번 사고 직후 삼성전자의 첫번째 해명 역시 "도시바 배터리를 더 이상 공급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구형 도시바 배터리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부지기수다. 또 언제 어디서든 동일 배터리가 터질 수 있는 상황인데 빨리 동일 제품 사용자들에게 주의를 환기시키는 의미에서라도 빨리 제조사를 밝히고 리콜 등 추가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 배터리가 삼성SDI 제품일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네티즌은 "배터리가 타버려 제조사를 알기 쉽지 않다고 하는데 전소가 되지 않은 한 전문가들은 모양만 보고도 쉽게 제조사를 알 수 있을 것"이라며 "SDI 제품이기 때문에 감추려 드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사고 발생 하루가 지난 25일 오후 6시 현재까지도 배터리 제조업체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사고 노트북을 바닥에 떨어뜨려 크게 손상된 상태"라며 "현재 관련부서에서 회의가 계속 열리고 있고 정확한 결과는 26일경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배터리 폭발사고를 계기로 현재의 표준 규격 마련과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 2006년 일본의 전자업체 소니는 자사의 바이오(VAIO)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면서 델과 애플에 납품한 노트북용 배터리 590만개를 리콜해야 했고 전세계 노트북 업계는 배터리 부족상황을 맞았다. 소니는 배터리 리콜에 모두 4000억원 이상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에도 산업계에서는 기존 리튬이온 배터리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기존 알카라인이나 망간 배터리에 비해 메모리현상(불완전 충전 및 방전시의 배터리 용량 감소)이 나타나지 않아 수명이 길고 공해물질(니켈, 카드뮴의 중금속)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리튬은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전자 구조와 액체 전해질을 사용하기 때문에 합선이 일어나면 급속열반응(Runaway Thermal reaction)이 발생, 케이스가 녹거나 전해질이 흘러나오고 그 열과 압력으로 인해 폭발하기도 한다.
배터리 사고를 미리 겪은 일본은 이같은 위험을 인지해 지난해 11월 ‘전기용품안전법’을 개정해 리튬2차전지 안전관리 시행 기준을 마련중이다. 우리나라 산업자원부 산하 기술표준원도 리튬2차전지 안전인증을 위한 시험항목 및 시험법에 관한 논의를 진행중이다.
시민단체 녹색소비자연대도 25일 성명서를 내고 "해당 제품 리콜과 즉각적 안전인증기준 마련 및 안전성 인증 기준, 소비자 안전을 위한 정보 제공 등을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단체는 이어 "노트북은 이동시 사용보다는 책상에서 장시간 전원을 꽂은 상태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안전검사가 이뤄져야 한다"며 "배터리 폭발 방지를 위해 평소 노트북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공식적인 소비자 주의사항 등도 제공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배터리 표준 규격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처럼 생산업체들이 저마다의 규격으로 배터리를 생산하면 이로 인한 호환성 저하로 2006년 배터리 부족 사태가 재연될 수 있고 무엇보다도 배터리 기술 발전에 좋을 게 없다는 논리다. 전기전자시험연구원 관계자는 "배터리의 표준화 생산이 가능해지면 그에 따라 업체들이 제조비용을 줄여 연료전지 등 리튬이온전지 대체품 개발에 투자할 여지가 커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리튬이온전지 시장에서 한국은 일본에 이어 세계 2위 생산국으로 삼성SDI가 월 3500만개, LG화학이 월 2950만개를 생산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