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임원님들, 성희롱 예방교육 시간입니다”

입력 2017-11-14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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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온라인뉴스부장

“‘아까 내가 점심때 자장면 먹었으니까, 이따 오후 2시쯤에 성희롱해야겠다’, ‘퇴근하고 다이소에서 장보고 인터넷에다 8시쯤에 성희롱해야지’, 이런 사람 없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아이고, 내가 왜 성희롱을 해서 내 인생 망치고, 회사에서도 잘리고, 아이고 X됐네’라는 생생한 인터뷰를 1시간 내내 틀어 줘야 한단 말이죠.”

방송인 유병재가 9월 홍대에서 열린 스탠드업 코미디쇼에서 한 성희롱 예방 교육에 대한 얘기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얘기다.

사내 성희롱이나 성추행 문제를 다루는 전문가들도 주장한다. 직장 내 성범죄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가해자의 파멸을 가져오는 치명적인 일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이다.

최근 한샘 등 조직 내 성범죄 사건이 불거지며 드는 생각은 ‘잊을만 하면 또’이다. 도대체 무엇부터 해야 이런 일을 막을 수 있나 생각하다 사내 성희롱 예방 교육을 떠올렸다. 성폭행과 같은 범죄로 번질 수 있는 조직 내 희롱이나 추행을 예방하는 가장 기본적이며 최소한인 방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병재가 언급했듯, 현재 성희롱 예방 교육은 ‘조롱의 대상’ 수준이다. 실효성 없는 무의미한 일이라는 걸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있지 않으냐는 식이다.

직장인들이 성희롱 예방 교육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서 관련 설문조사를 찾아봤다. 2015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직장인 10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00점 만점에 49점이었다.

기업마다 의례적으로 매년 실시하는 성희롱 예방 교육이 정말 내실 있는 교육이 되려면 정부와 기업, 감시기관의 다각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교육을 하지 않았을 때 막대한 책임을 묻는다든가, 교육 참여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 그리고 무엇보다 현실성 있는 내용으로 교육이 구성돼야 한다.

바람직한 성희롱 예방 교육을 위한 여러 필요조건 중 조직 내 성 평등 문화를 조성하기 위해 임원들만 따로 모아 시행하는 교육을 제안한다. 대표를 포함한 임원들은 사내 문화를 만들고 책임지는 핵심 라인이기 때문이다.

우선 이들에게 조직 내 성범죄는 엄청난 리스크 요인이라는 인식을 깊이 심어줄 필요가 있다. 한샘 사건에서 봤듯이 조직 내 성범죄는 해당 기업의 이미지를 훼손할 뿐 아니라 실질적인 피해를 가져오는 돌이키기 힘든 리스크 요인이다. “아니 뭘, 그 정도 갖고 그래?”가 가져올 수 있는 유·무형의 피해를 주지시켜야 한다.

성 평등의 조직문화는 이런 리스크 관리일 뿐 아니라 조직원들의 생산성과 직결되는 실질적인 전략 차원이다. 성적인 굴욕감이나 불쾌감이 깔린 조직의 노동 환경이 어떨지는 뻔하지 않은가.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2015 성희롱실태조사’에서 드러난 사내 성희롱 소문에 대한 영향 통계는 이를 뒷받침한다. 누군가의 성희롱 피해를 접했을 때 (특히 대부분의 여성 직원들이) ‘나도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회사에 대한 실망감이 컸다. 당연히 여성들은 근로 의욕 저하나 회사를 나가고 싶은 욕구 등 부정적인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답했다.

흔히 조직 내 성범죄 사건이 불거질 때마다 개인적인 일로 치부하거나 ‘아직 우리 사회가 남성 중심 사회라 그렇다’며 탓을 돌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견고하고 건전한 조직문화 안에서라면 일부 개인의 찌든 남성 중심성은 기를 펼 수 없다. 그리고 이런 문화의 토대는 기업의 오너에서 임원진으로 내려오는 행동과 사고방식이다. 사내 성범죄가 일어났을 때 즉각적인 조치를 하고, 누구든 부당한 행위 앞에서 “NO”라고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든다면 오염된 행동은 발붙이기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본다면 회사는 전쟁터다. 그러나 전우애가 있고 바람직한 경쟁이 있는 전쟁터여야 하지, 권력과 성별 간 서로를 갉아먹는 지옥이 된다면 모두에게 마이너스일 뿐이다. 조직문화, 성 평등을 돌아봐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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