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방로] 어느 손이 더 ‘더러운 손’인가

입력 2017-10-20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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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영화를 제작만 해놓은 상태인데 어떤 극장에서 이를 불법 복제해 상영한 일이 미국에서 있었다. 제작사인 미첼 브라더스(Mitchell Brothers Film)는 상영관을 상대로 저작권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상영관은 제작사가 음란물을 만들었으니 법원이 제작사 편을 들어서는 안 된다고 맞섰다.

상영관 주장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영미법에 ‘더러운 손(Unclean Hands)’이라는 오랜 판례 이론이 있다. 즉 법의 도움을 받으려면 깨끗한 손이어야 한다는 것으로, 손이 더러운 자는 법이 도와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제작사는 포르노를 제작했으므로 비록 상영관이 제작사의 저작권을 침해했어도 법원으로서는 더러운 손을 지닌 제작사의 청구를 받아들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도 ‘적반하장(賊反荷杖)’이라는 말이 있다. 잘못이 있는 사람이 상대의 잘못을 지적할 때 적반하장 아니냐고 하면 그것으로 논쟁은 끝나거나 약해질 수밖에 없다. 더러운 손 이론은 적반하장이란 말의 영미판인 셈이다. 그런데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제작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더러운 손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원고의 잘못이 피고에게 직접 행해진 경우다. “도박장 개설자가 노름꾼에게 빌려준 도박 빚을 갚으라고 할 수 있겠는가”가 이에 해당한다. 도박장 개설자가 돈을 빌려줌으로써 노름꾼이 도박을 하게 된 것이므로 도박 빚은 안 갚아도 된다.

둘째, 원고의 잘못이 피고와 무관한 경우다. 밀린 월세를 독촉받은 세입자가 건물주의 소득세 체납 사실을 들어 거부한 사례다. 사안과 무관한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 자신의 잘못을 덮고 부당한 주장을 관철시키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세입자는 당연히 월세를 내야 한다.

셋째, 원고의 잘못이 피고와 무관하지 않지만 피고보다는 일반 대중에 행해진 경우다. 이때는 잘못의 크기를 비교해 더러운 손 항변을 받아들일지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이 유형에 해당하는 미첼 사건에서 법원은 둘 다 잘못이 있지만, 음란물을 만든 제작사의 잘못과 이를 무단 복제하여 일반에 유포한 상영관의 잘못을 비교해 후자의 잘못이 더 크다고 보아 더러운 손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더러운 손을 경우별로 나누고 적극적으로 불법성의 크기를 비교 분석한 법관의 예리한 판단이 돋보인 판결로 평가받고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와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란다”는 유사 속담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둘을 같은 것으로 보면 정의가 무너질 수 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꾸짖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되겠지만, 반대의 경우는 허용해야 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이를 지적하는 쪽의 사소한 잘못을 들춰내, 이른바 물 타기를 시도할 수 있다. 사법부나 객관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 등 제3 지대가 자칫 똥이나 겨나 도토리 키재기 아니냐고 넘겨버리면 판단을 그르칠 수 있다. 정의가 실종되는 순간이다.

매 학기 학생들에게 이런 질문을 던진다. 원고와 피고 둘 다 잘못이 있는데(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원고의 잘못이 어느 선을 넘을 때 법의 구제를 거두겠는가라고. 원고와 피고 잘못의 비율이 10:90, 즉 원고의 잘못이 10%를 넘으면 안 된다는 두루뭉술한 것에서, 49:51, 즉 원고가 피고보다 조금이라도 나은지 면밀히 따져야 한다는 면도날 같은 것까지 다양한 답변이 나온다. 대체로 30:70, 40:60 선에서 수렴된다. 독자들의 생각은 어떤지 자문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는 줄곧 정의와 안정이라는, 때로 상충되는 두 개의 가치 사이에서 선택의 기로에 서왔다. 더러운 손 주장이 무분별하게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쓰이는 사회에서 진정한 발전과 인간 삶의 나아짐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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