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공장’ 중국 물가상승률 계속 저조해 각국 인플레 기대 퇴색…긴축 시동 거는 주요국 중앙은행 의도 빗나갈 수도
중국의 저인플레이션 기조가 계속되면서 세계 각국의 불안을 고조시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본격적인 긴축 궤도에 접어들고 유럽중앙은행(ECB)도 자산매입 축소를 거론하는 등 통화정책 기조를 바꾸려는 찰나에 중국의 물가상승률이 계속 저조해 이런 정책들이 통하지 않을 위기에 놓인 것이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10일(현지시간) 6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1.5%, 생산자물가지수(PPI)는 5.5% 각각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CPI는 블룸버그통신 집계 전문가 예상치 1.6%를 소폭 밑돌았고 PPI는 시장 전망과 부합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제조업 물가인 PPI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 2위 경제국이자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PPI가 오른다면 글로벌 경제성장에 계속 걸림돌로 작용하는 세계적인 저인플레이션 기조에 제동을 걸 수 있기 때문. 신발에서부터 전자제품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생산비용이 세계 물가를 좌우하는 상황에서 제품 가격이 상승하면 기업 실적이 호전되고 임금이 더 크게 인상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희망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지난달 PPI가 전년보다 오른 것은 기업들이 재고를 다시 채우는 과정에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중국 정부가 부동산 과열 억제에 나서면서 건설 등 연관 부문 활동이 둔화하고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도 하락하는 등 PPI 상승을 뒷받침했던 요소들이 퇴색하기 시작했다.
또 중국 정부가 금융시스템 안정을 위해 부채 증가세를 제한하려는 것도 경제에 급제동을 걸 수 있다. 마이클 에브리 라보뱅크그룹 금융시장 리서치 대표는 “중국이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디스인플레이션(낮은 물가상승률)의 원천이 될 수 있다”며 “중국 PPI가 올해 하반기와 내년에 절벽으로 향해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되면 글로벌 디플레이션이 다시 뉴스 헤드라인으로 떠오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은 지난해 하반기 PPI가 사상 최장 기간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나면서 글로벌 리플레이션(점진적 물가상승)에 대한 기대를 키웠으나 최근 들어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PPI 상승률은 지난 2월 7.8%로 2008년 9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으나 이후 계속 하락하고 있다. 블룸버그 집계에서 전문가들은 올해 말 중국의 PPI 상승률이 5.3%로 떨어지고 내년 말에는 2.0%까지 추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 세계적으로 가뜩이나 낮은 인플레이션은 경기 회복의 걸림돌로 작용하며 주요국 중앙은행의 가장 큰 고민거리로 부상했다. 연준이 물가판단의 기초자료로 쓰는 개인소비지출(PCE) 물가지수는 지난 5월에 전년 동월 대비 1.4% 상승에 그쳐 6개월 만에 최저 수준을 나타냈다. 이는 연준의 물가안정 목표치인 2%를 크게 밑도는 것이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지난달 CPI는 전년 동월 대비 1.3% 상승해 연중 최저치를 기록했다. 일본은 몇 년째 간신히 디플레이션을 벗어나는 수준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긴축에 시동을 거는 주요국 움직임이 헛발질이 될 수 있다. 저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연준 등이 기준금리 인상에 더욱 고민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일본은행(BOJ)은 이미 아무리 돈을 쏟아부어도 인플레이션이 나아지지 않는 악순환에 빠져 탈출이 요원하다.
그리고 이런 세계적인 고민거리의 근저에는 중국이 있다고 블룸버그는 강조했다. 지난 상반기 중국의 인플레이션이 저조했던 것이 다른 나라에 파급했다는 것이다. 롭 서브바라만 노무라홀딩스 아시아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의 완만한 물가상승률은 당분간 이런 상황이 지속될 것임을 보여준다”며 “이에 세계 다른 나라도 경제가 회복되는 와중에 인플레이션은 낮은 상태를 유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