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스타트업의 조건

입력 2017-06-1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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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점 산업2부 기자

“스타트업 투자는 ‘스타트’ 하는 타이밍이 아니라 ‘업’ 할 타이밍에 받아야 하는 것 아닐까요?”

최근 만난 한 스타트업 대표 K의 반문에는 서비스 개념과 사업 모델도 정립되지 않은 채 각종 투자설명회에 참여하고 VC(벤처캐피털) 투자 유치에 뛰어드는 스타트업 일각을 향한 비판이 담겨 있었다. 첫 사업을 10년 만에 정리하고 두 번째 창업에 나선 K에게 “왜 다른 스타트업처럼 자금을 모으러 다니지 않냐”고 묻자, “투자를 받지 않으면 출발조차 못할 사업이었다면 시작도 않았을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에 만난 대표 M은 한 스타트업 대표가 찾아온 얘기를 들려줬다. 방문자는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끄덕거릴 만한 유명한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었다. 아이디어와 기본적인 기술로 투자자들로부터 수십억 원의 투자를 유치하고 여러 피칭대회에서 수상도 했지만, 개발 과정에서 난관에 부딪힌 나머지 경쟁사 대표인 M에게 찾아와 기술 협력을 요청한 것이었다.

매년 역대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는 VC들의 벤처투자 열풍과 함께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도 대폭 늘어나면서 VC 자본이 창업을 활성화하고 있다는 칭찬을 받기도 한다. 정부의 창업 지원책도 다양해지면서 ‘1~2년 먹거리는 걱정 없다’고 귀띔하는 스타트업 대표의 말도 곧잘 듣게 된다.

하지만 이런 ‘먹거리’를 통해 성장의 동력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옆으로만 성장한 ‘살찐 고양이’가 되는 스타트업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투자를 받은 이야기는 기삿감이 되지만 투자를 모으다 2~3년도 안 돼 사라지는 이야기는 기삿감이 되지 않기에 업계 밖에서는 성공 신화만이 메아리치게 된다. 기사화된 투자 유치 소식은 새로운 투자를 부르는 허명(虛名)이 되기도 한다. K 대표의 말로 마무리한다. “스타트했다고 다 스타트업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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