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인지 본심은폐증(本心隱蔽症)이 한국 사회에는 많다. 왜 좋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따지면 마음에는 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 사랑이나 정(情)을 혼자 생각만으로 만족해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그래서 윤기(潤氣)가 없었다. 팍팍하고 가파르고 날이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세월을 살면서 어디에서 위로받았을까. 위로는 없었고 포기가 많았다. 그래서 특히 내 어머니 시대의 여성들은 한숨이 많았고 한숨이 길었고 한숨을 들이켰다. 누구 하나 “힘들지요?”라고 위로한 사람이 없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믿고 모든 불만과 억울함을 꿀꺽 삼키는 일에만 능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날에는 “속 터져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정말 배가 터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오죽 답답하게 혼자 삼키고만 살아서 속이 터지는 불상사가 났겠는가. 그것이 한국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시대는 놀랍게 달라졌다. 스마트폰 문자로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마음의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어른들은 많다. “말해야 맛인가요?” 아내와의 싸움 끝에 답답하여 내게 상담 겸 이야기한 어느 남자의 말이다. 부부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짧다. 마음만 믿으라고 하면 그것은 무리한 요구다.
이 세상에 완벽한 행복은 없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행복도 없다. 이 세상에 단 한 개의 걱정도 없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사실 말만 적당히 잘하면 웬만한 어려움은 잘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그런대로 잘 끌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선가 발목을 잡는 빌미의 따스한 손길이 필요하다. 종일 스트레스에 부딪치며 사는 남자도, 종일 자잘한 집안 일로 비슷한 일들과 싸우는 여자도 속이 터질 것 같은 것은 마찬가지다. 집에 가면 보겠지만 신선한 아침에 목소리를 듣거나 문자라도 날리며 “당신, 오늘도 힘내요”라고 서로 마음을 전달하면 픽 웃겠지만 그 마음은 피로 해소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대화가 보약이라고 해서 어느 날 남편과 늦은 밤에 와인 한잔을 하다가 내가 한 마디, 남편이 두세 마디 나누다 우리는 큰 소리로 싸웠다. 결국 우리는 같이 “우리는 안 돼. 다른 부부 다 돼도 우리는 안 돼”라고 단정을 지었다.
지금은 후회스럽다. 내가 그의 약점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거 아닐까. 위로가 먼저다. 가끔은 서로 마음을 트라고 나는 말한다. 단 둘이 서로의 본심을 무리 없이 말하는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부부라는 생각을 부부의 날(5월 21일)이 한참 지났는데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부부의 행복이 가정을, 사회를, 국가를 들어 올리는 힘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