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달자의 햇살과 바람] 말은 사랑이다

입력 2017-05-26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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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言]은 인간의 특권이라 사람들은 날마다 말을 하고 산다. 사실 눈만 뜨면 하는 것이 말이 아닌가 싶다. 상대와의 의견 소통도 말이고 가르치는 교육도 말이고 사회가 도덕적으로 형성되어 가는 일도 모두가 말로 이루어진다. 말이 없다면 인간 세상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그 흔한 말임에도 불구하고 진정하게 반드시 해야 하는 말에는 우리가 너무 인색할 때가 많다. 한국 사람들은 침묵을 금으로 지정해 두고 말하는 것을 상스럽게 생각한 때도 있었다. 말이 많으면 방정맞다고 야단을 맞았고 밥 먹을 때는 말이 금기(禁忌)였던 때도 있었다.

그래서인지 본심은폐증(本心隱蔽症)이 한국 사회에는 많다. 왜 좋다고 말하지 않느냐고 따지면 마음에는 있다고 한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 온 것이다.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 사랑이나 정(情)을 혼자 생각만으로 만족해한 한국 사람들의 마음은 그래서 윤기(潤氣)가 없었다. 팍팍하고 가파르고 날이 서 있을 때가 많았다.

그 세월을 살면서 어디에서 위로받았을까. 위로는 없었고 포기가 많았다. 그래서 특히 내 어머니 시대의 여성들은 한숨이 많았고 한숨이 길었고 한숨을 들이켰다. 누구 하나 “힘들지요?”라고 위로한 사람이 없었다. 누구나 다 그렇게 산다고 믿고 모든 불만과 억울함을 꿀꺽 삼키는 일에만 능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어린 날에는 “속 터져 죽었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 나는 정말 배가 터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하면 오죽 답답하게 혼자 삼키고만 살아서 속이 터지는 불상사가 났겠는가. 그것이 한국인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시대는 놀랍게 달라졌다. 스마트폰 문자로 하루에 백 번도 넘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시대이지만 아직도 마음의 말을 쉽게 꺼내지 못하는 어른들은 많다. “말해야 맛인가요?” 아내와의 싸움 끝에 답답하여 내게 상담 겸 이야기한 어느 남자의 말이다. 부부의 사랑은 유효기간이 짧다. 마음만 믿으라고 하면 그것은 무리한 요구다.

이 세상에 완벽한 행복은 없다. 고통이 따르지 않는 행복도 없다. 이 세상에 단 한 개의 걱정도 없는 사람은 아직 본 적이 없다. 사실 말만 적당히 잘하면 웬만한 어려움은 잘 지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현실을 그런대로 잘 끌어가기를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선가 발목을 잡는 빌미의 따스한 손길이 필요하다. 종일 스트레스에 부딪치며 사는 남자도, 종일 자잘한 집안 일로 비슷한 일들과 싸우는 여자도 속이 터질 것 같은 것은 마찬가지다. 집에 가면 보겠지만 신선한 아침에 목소리를 듣거나 문자라도 날리며 “당신, 오늘도 힘내요”라고 서로 마음을 전달하면 픽 웃겠지만 그 마음은 피로 해소의 원동력이 될 것이다. 대화가 보약이라고 해서 어느 날 남편과 늦은 밤에 와인 한잔을 하다가 내가 한 마디, 남편이 두세 마디 나누다 우리는 큰 소리로 싸웠다. 결국 우리는 같이 “우리는 안 돼. 다른 부부 다 돼도 우리는 안 돼”라고 단정을 지었다.

지금은 후회스럽다. 내가 그의 약점을 바로잡으려고 했던 거 아닐까. 위로가 먼저다. 가끔은 서로 마음을 트라고 나는 말한다. 단 둘이 서로의 본심을 무리 없이 말하는 부부가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부부라는 생각을 부부의 날(5월 21일)이 한참 지났는데도 생각해 보는 것이다. 부부의 행복이 가정을, 사회를, 국가를 들어 올리는 힘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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