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내 저축은행 금리체계가 시중은행처럼 바뀔 전망이다. 은행처럼 조달금리를 기준금리로 두는 방식이다. 이는 업계 최초의 일이다.
주먹구구식인 금리체계를 단순화하고 합리적으로 바꿔 금리수준을 낮추자것이 당국 의도다. 문재인 정부의 법정최고금리 20% 인하 공약과 궤를 같이 하기도 한다. 하지만 형식만 시중은행 금리체계처럼 개편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용두사미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다.
◇복잡한 저축銀 금리체계…‘조달 기준금리+가산금리’단순화
26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대출금리체계를 ‘기준금리(조달금리)+가산금리’로 단순화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은행과 같은 방식이다. 현재 저축은행은 대출원가 4개(조달, 신용, 업무, 자본)에 적정 이윤(목표이익률, 조정금리)을 더해 대출금리를 정한다.
현재 저축은행은 조달원가(예수금 금리 등), 신용원가(차주의 신용도), 업무원가(인건비·광고비 등), 자본원가(BIS비율) 등 대출원가를 합리적으로 반영해 최종 금리를 산출하도록 돼 있다.
당국이 저축은행 금리체계 개편에 나서는 것은 저축은행들이 차주 신용도 등에 무관하게 멋대로 원가를 산정하는 일이 비일비재했기 때문이다. 지난달 26일에는 SBI저축은행, OK저축은행 등 14개 저축은행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경영유의 조치를 받은 바 있다.
이에 금감원과 저축은행은 지난달 28일 불합리한 영업 관행 개선방안 업무협약(MOU)을 맺고 대출금리 산정 체계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높이기로 했다. 현재 저축은행중앙회와 업계는 세부적인 대출금리 산정 내용을 두고 협의에 들어간 상태다.
새로운 금리체계에선 현 4개 대출원가가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로 나뉘어 반영된다. 기준금리에는 조달원가, 가산금리에는 나머지 3개 원가(신용·업무·자본원가) 등이 포함된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4개 대출원가를 내부 기준금리로 삼는 구조였다면 이중 조달원가만을 떼어내 기준금리로 삼고 나머지는 가산금리로 하는 구조로 바뀌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저축은행감독국 건전경영팀 관계자는 “기존에도 대출원가 4개가 내부 기준금리 역할을 했지만 은행 금리체계로의 통일성, 단순화 등을 위해 이들 원가를 기준금리와 가산금리로 그룹핑(Grouping)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 대출금리도 기준금리에는 조달금리(코픽스 금리, 금융채 금리 등), 가산금리에는 차주 신용도, 업무원가, 목표이익률 등이 반영된다. 은행들은 동일한 기준금리에 재량껏 가산금리에 차등을 둬 최종금리를 산정한다.
◇현 대출원가 그룹핑만 다르게… 무늬만 개편 우려도
하지만 새롭게 만들어질 저축은행 금리체계는 은행과는 차이가 있다. 은행과는 달리, 모든 저축은행이 동일한 기준금리(조달금리)를 사용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조달금리를 내부 기준금리로만 사용할 뿐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은 규모도 크고 비슷한 조달금리를 사용하고 있어 동일한 기준금리를 사용하는 데 문제가 없지만 저축은행은 79개 사 규모가 천차만별이고 개수도 많은 만큼 하나의 조달원가를 모두 사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예컨대, A저축은행이 정기예금으로 조달하는 금리가 연 2.2%인데 이보다 낮은 1.8%로 기준금리가 고정되면 그만큼 대출금리가 낮게 산정되니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이에 기존 금리산정 체계와 별 다를 게 없을 거라는 우려가 나온다. 현 대출원가에서 그룹핑만 다르게 했을 뿐 은행 코픽스 금리처럼 업권 내 모든 금융기관이 동일한 기준금리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또한 가산금리에서 저축은행들이 지금처럼 신용도에 무관하게 고금리를 부과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이다. 이는 시중은행에서도 나오는 문제다. 시중은행도 기준금리는 고정돼 있지만 가산금리를 은행 재량껏 과하게 올리는 일이 있어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대형저축은행 관계자는 “가산금리쪽엔 차주의 신용도가 큰 영향을 미칠 텐데 각 사 재량으로 신용리스크를 과하게 평가해 금리를 올릴 수도 있지 않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