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와의 정상회담 앞두고 시진핑과 전화통화…하나의 중국ㆍ일본의 센카쿠 열도 영유권 인정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과 일본을 어르고 달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업가로서 잔뼈가 굵은 트럼프 대통령이 양국에 민감한 지정학적 이슈를 통해 무역협상에 진전을 얻기 위한 포석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가 9일(현지시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취임 이후 처음으로 전화통화를 하면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보도했다.
백악관은 이날 성명에서 “두 정상이 수많은 이슈를 논의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존중해달라는 시 주석의 요청에 동의했다”며 “또 이들은 서로를 자신의 나라로 초청했다. 두 정상은 향후 대화에서 매우 성공적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중국’은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와 대만이 나뉠 수 없고 합법적인 중국 정부는 오직 중화인민공화국 하나라는 원칙이다. 중국은 이 원칙에 따라 대만이 자국 영토 일부라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고 미국도 1970년대 이후 이를 인정해왔다. 또 중국과 대만은 1992년 하나의 중국을 인정하되 중화인민공화국(중국)과 중화민국(대만)이 각자의 해석에 따른 명칭을 사용하기로 한 ‘92 컨센서스’에 합의하기도 했다.
트럼프는 이 원칙에 도전하는 것처럼 보여 중국을 매우 긴장하게 했다. 그는 지난해 12월 미국이 대만과 단교한 1979년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 당선자 자격으로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전화로 직접 대화를 나눴다. 그는 또 트위터 트윗이나 인터뷰를 통해 하나의 중국도 협상 대상이라고 밝혔다.
그런 트럼프가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중국을 안심시킨 것이다. 그가 전날 시 주석에게 서신을 보내 뒤늦은 새해 인사를 건네고 양국의 건설적 관계를 기대한다고 밝힐 때까지만 해도 이런 해빙 모드가 전개될지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전날만 해도 트럼프가 취임 이후 10여 개국 정상과 전화통화를 하는 대신 시 주석에는 서신만 보냈다는 사실에 양국의 갈등이 오래가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별안간 트럼프가 전화를 건 것은 물론 중국이 풀기 어려운 과제로 끙끙 앓았던 핵심 사안에 대해서도 명쾌하게 답을 준 것이다.
전문가들은 특히 트럼프가 시진핑과 전화한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0일 자신과의 정상회담에 맞춰 워싱턴에 도착한 가운데 중국과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수석 중국 애널리스트를 역임했던 데니스 와일더는 “아베 총리의 방문에 앞서 전화통화가 이뤄진 중요성은 절대 과장된 것이 아니다”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 대한 약속을 재확인함으로써 트럼프는 어렵지만 해결할 수 있는 무역관계 재균형에 대해 중국과 건설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졸지에 뒤통수를 맞게 된 일본에도 트럼프는 당근을 제시했다. 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도 미ㆍ일 안보조약 제5조가 적용된다”며 “일본의 영유권을 약화시키는 어떤 일방적인 행동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제5조는 미국의 대일 방위 의무를 정한 규정이다.
중국과 일본 모두 트럼프가 제시하는 당근책에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두 나라 모두 트럼프가 불공정한 무역 관행으로 부당한 이득을 보고 있다고 직접적으로 비판한 국가들이다. 지난해 미국의 무역적자에서 나란히 1,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두 나라 모두 트럼프에게 납득할 만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