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일본 도시바의 지분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낸드플래시 사업의 전력을 보강하고자 ‘애증’ 관계인 도시바에 손을 내민 것이다.
SK하이닉스와 도시바는 사실상 애증의 관계다. 한때 기술유출 문제로 법정 공방을 벌였으면서도 글로벌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D램의 대체재로 주목받는 차세대 메모리 STT-M램을 공동으로 개발하고 있기 때무이다.
이들의 애증의 역사는 2014년부터 시작됐다. 2014년 7월 도시바가, SK하이닉스가 부정한 방법으로 자사 기술을 빼냈다면서 이른바‘산업 스파이’건으로 1100억 엔(약 1조1186억원) 규모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것. 같은 해 3월 도시바는 자사와 샌디스크와의 합작 공장에서 근무하던 직원이 SK하이닉스로 이직하면서 10GB 반도체 제조공정 기밀문서를 유출했다고 주장했다.
반도체 업계에서 비교적 흔한 특허침해 소송이 아니라 기술 유출에 대한 소송인 탓에 양측의 공방과 논란은 거셌다. 일각에서는 도시바가 제기한 일방적 주장에 대한 검토 없이 곧바로 일본 정부가 개입해 조사한 상황을 두고, 지나친 공권력 개입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결국 그해 12월, SK하이닉스는 도시바에 2억7800만 달러(약 3161억원)를 주고 합의했다. 영업비밀과 특허 등 지적재산권 둘러싼 일본 내 소송으로는 최고액이었다. 당시 합의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SK하이닉스가 도시바의 주장을 일부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이 장기전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관측과 달리, 당시 양사가 조기 합의에 도달한 것은 진행 중인 M램 공동 개발 관계를 의식했기 때문이었다. 삼성전자·인텔 등과 치열한 개발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소송이 길어져 협력사끼리 껄끄러운 관계가 장기화한다면 M램 개발도 늦어진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이다.
도시바의 다나카 히사오 사장은 당시 “(SK하이닉스가) 기밀 정보를 부정하게 취득·사용한 것은 유감이지만 향후 메모리 사업 확대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우리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역시 “책임을 인정한 것은 아니지만 경영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후 SK하이닉스와 도시바는 지난해 12월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학회인‘IEDM 2016’에서 공동 개발한 4GB STT-M램을 발표했다.
한편 도시바는 분식회계 스캔들로 경영난에 처하면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원자력 발전 사업에서 대규모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진 도시바는 지난달 말 주력사업인 반도체 사업을 분사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