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년규 부국장 겸 정책사회부장
정 전 비서관이 말했던 차명폰이 대포폰 논란을 일으키자 청와대 측은 “차명폰과 대포폰은 엄연히 다르다”며 방어 논리를 폈다. 비공식적으로 “도용한 게 아니고 비서관이 사용한 휴대전화를 쓴 것일 뿐”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청와대 측의 해명을 꼼꼼히 살펴봐도 무슨 말인지 도통 모르겠다.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의 전화를 받아 사용한 것이 대포폰이 아니라 차명폰이라니, 궤변이 아닐 수 없다.
대포폰이라는 단어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나오지 않는다. 차명폰도 게재돼 있지 않다. 다만 국립국어원은 대포폰을 ‘휴대 전화를 사용하는 당사자가 아닌 다른 사람의 명의로 개통한 휴대 전화’로 설명하고 있다. 한마디로 차명 전화를 일컫는 신조어다.
대포폰이 주로 범죄에 사용되는 부정적인 단어라는 점에서 청와대는 굳이 차명폰이라는 단어를 차용했을 터다. 정 전 비서관이 밝힌 차명폰 사용 이유는 더 가관이다.
정 전 비서관은 이날 “우리 정치사에서 조금 아픈 부분인데, 어느 정권이라고 얘기 안 해도 항상 도청·감청 논란이 많이 있었지 않았냐”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강일원 재판관이 “누가 대통령을 사찰하겠느냐. 도·감청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정 전 비서관은 “도청 개념보다는 북한도 있을 수 있고…”라며 말을 흐렸다.
박 대통령과 ‘비선 실세’인 최순실, 정 전 비서관을 비롯해 이재만·안봉근 전 비서관 등 ‘문고리 3인방’ 간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 북한이 들어서는 안 될 내용이었는가 보다. 정말 웃기는 해명이다.
앞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청와대의 대포폰 사용 의혹을 제기했을 때 청와대 측은 이를 극구 부인했다. 지난해 11월 안 의원은 국회 긴급현안 질문에서 “장시호 씨가 6대의 대포폰을 사용했다”며 “6개를 개설해 그중 하나는 대통령에게 줬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청와대는 이에 대해 “터무니없는 허위 주장”이라며 정면 반박한 바 있다.
당시 안 의원의 질문을 청와대에 다시 묻는다면 뭐라고 답할까. “대포폰이 장시호 씨가 준 것이 아니므로 ‘허위 주장’이라고 밝혔다”라고 답할지도 모른다. 대포폰 사용에 대해서는 일체 함구할 것이 분명하다.
청와대 측의 궤변과 거짓말은 이뿐만이 아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해 다시 상기해 보자. 박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4일 2차 대국민담화에서 세월호가 침몰할 당시 일정을 국민에게 나중에 소상히 알리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청와대 홈페이지를 통해 몇 개의 유리한 입장만 나열한 게 전부다. 이후 헌법재판소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뒤늦게 공개한 세월호 참사 당일 박 대통령의 일정은 여전히 허점이 많고 의문투성이다. 오히려 여타 국가기관들이 발표한 내용과 다른 점이 한두 개가 아니다.
박 대통령의 측근들도 마찬가지다. 국회의 최순실 국조특위가 위증죄로 고발한 사람이 10명이 넘는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장관은 문화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삼성물산 합병 건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최순실에게 돈을 건넨 사실과 관련해 거짓말을 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다.
지난해 10월 말 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래 3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중요한 국가 문서를 최순실에게 넘기지 않았다거나, 태블릿PC를 사용할 줄 모른다거나 등등 국민이 보는 앞에서 이뤄진 청와대와 측근들의 뻔한 거짓말, 치졸한 변명은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다. 국조특위, 검찰과 특검 조사, 탄핵심판 등에서 조금이라도 불리하면 ‘모르쇠’로 일관하거나 아예 출두하지 않는 것은 당연지사가 됐다. 거짓말과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는 행위가 알게 모르게 사회에 유행병처럼 스며들까 봐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