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1세대’ 야후, 결국 역사 속으로

입력 2017-01-11 08:07수정 2017-01-11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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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사 메이어 야후 CEO가 2014년 1월 7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에서 연설하고 있다. 라스베이거스/AP뉴시스

야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핵심인 인터넷 사업을 미국 이동통신업체 버라이존 커뮤니케이션에 넘기기로 한 야후는 매각 절차가 완료되면 야후파이낸스, 야후스포츠 등 남은 사업들은 ‘알타바’라는 이름으로 바꾸기로 했다. 마리사 메이어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한 경영진도 모두 물갈이된다. ‘야후’하면 직관적으로 떠오르던 인터넷 포털이 더는 야후로 불리지 않는다는 뜻이다. 알타바로서의 야후는 투자회사로 탈바꿈한다.

야후가 껍데기만 남겨놓고 사명(社名)부터 경영진까지 모든 것을 바꾸려는 데는 이유가 있다. 2000년대 초까지 업계 최강자로 군림했던 그 야후의 존재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야후는 1994년 출범한 후 2000년대 초반까지 세계 검색시장 점유율의 절반을 차지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 구글의 출현으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사용자가 원하는 정보를 빠르고 정확하게 찾아주는 구글은 날로 성장했고, 이와 대조적으로 야후는 번잡한 광고, 문어발식 콘텐츠로 외면 받았다.

야후 창업자이자 3대 CEO인 제리 양은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와의 매각 협상이 방책으로 꼽혔다. 2008년 MS는 양 CEO에게 서한을 보내 475억 달러(약 56조8000억 원) 규모의 인수안을 제시했다. 양 CEO는 이를 거절했고 주주들은 책임을 따져 물었다. 구글과의 온라인 광고 제휴도 실패한 양 CEO는 MS 매각에 다시 관심을 보였지만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2009년 캐롤 바츠 CEO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바츠 CEO는 MS와 제휴를 맺는 등 쇄신에 나섰지만 성적표는 초라했다. 2011년 9월 경영상 책임을 이유로 물러난 바츠 뒤로 팀 모스, 스콧 톰슨이 CEO 자리를 짧게 거쳐 갔다.

야후는 2012년 구글 출신 메이어 CEO를 영입해 혁신을 꾀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메이어 CEO는 야후의 6번째 CEO이자 두 번째 여성 CEO였다. 성과도 내지 못하면서 2015년에는 미국 여성 CEO 중 가장 많은 연봉을 받은 인물로 선정돼 구설에 올랐다. 그는 모바일에 집중해 야후를 살리겠다고 공언했다. 뉴스 요약 앱 ‘섬리’, 블로그 서비스 ‘텀블러’ 등을 잇달아 인수한 것도 모바일 집중 전략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구글, 페이스북으로 이미 대세가 넘어간 뒤였다.

메이어 CEO가 핵심인 인터넷 사업을 버라이존에 매각하려는 것도 야후의 몰락이 기정사실이 된 탓이다. 작년 7월 버라이존은 야후 인터넷 사업부를 48억3000만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협상이 불발될까 전전긍긍하는 쪽은 줄곧 야후였다. 매각 절차가 진행되던 작년 9월, 야후가 2014년에 해킹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합병 계획에 문제가 생겼다. 당시 버라이존의 프란시스 샤모 최고재무책임자(CFO)는 “5억 이용자의 개인정보 유출은 무시할 수 없는 일”이라며 “인수 뒤 상당한 타격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우려했다. 위기는 또 있었다. 지난달 야후는 성명을 통해 2013년 8월에 야후 회원 10억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발표했다. 이 두 번의 해킹으로 야후는 15억여 명의 개인정보를 유출한 기업으로 전락했다.

야후가 사명을 바꾸고 경영진 쇄신도 단행한다고 했지만 이 모든 것은 버라이존과의 협상이 완료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제다. 야후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서류를 제출하면서 사명 변경 사실을 노출한 것도 협상을 못 박으려는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버라이존의 야후 인수는 오는 3월 하순에 완료될 전망이다. 이후 야후는 일본 야후재팬과 중국 알리바바그룹의 지분을 가진 투자회사로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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