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금 1억 못 올리면 방 빼라는 집주인…‘뉴스테이’도 4억 필요 무늬만 서민주택
#서울 도봉구 아파트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모(35) 씨는 최근 전세 기간이 만료돼 전세비를 1억 원 올려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에 수도권 외곽지역으로 이사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전세 물량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일부 보증금을 내고 매달 월세를 내는 ‘준전세’에 입주했다. 살던 곳에서 밀려나면서도 보증금 대출에 매달 100만 원에 가까운 월세를 내게 되면서 생활의 질이 크게 나빠졌지만, 주변 많은 사람들이 비슷한 상황임을 보면서 위안을 삼기로 했다.
서민들의 주거비용이 크게 치솟으며 갈수록 삶의 질이 떨어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전세 물량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월세와 준전세가 채워가고 있다. 이는 주거비 상승으로 이어지며 서민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1일 서울부동산정보광장 통계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세가격 상승분을 월세로 돌리는 준전세 거래량은 1만533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1만2231건에 비해 25%나 급증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월세나 준전세가 은행 금리보다 높게 받을 수 있어서다. 정부도 사실상 전세 시대가 끝났음을 인정하고, 정책 기조 역시 월세로 전환하고 있다. 대표적인 정책이 뉴스테이(기업형 임대주택)다.
뉴스테이는 중산층 주거 안정을 위해 지난해 도입된 월세형 임대상품으로 최대 8년간 살 수 있고, 임대료 상승률도 연 5%로 제한된다. 대형 건설사가 참여하면서 브랜드를 통해 임대주택의 인식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일반 서민이나 중산층이 거주하기에는 비용이 높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수도권에 공급되는 뉴스테이의 경우 84㎡ 기준 기본 보증금이 2억~4억 원에 월 임대료가 50만~100만 원에 달한다. 고용노동부가 집계한 지난해 직장인 한 달 평균임금은 273만 원으로, 수도권 뉴스테이에 거주한다면 임금의 30~40%가량을 월세로 지불해야 하는 셈이다.
이렇다 보니 월세가 부담스러운 서민들은 여전히 전세 찾기에 나서며 무리한 전세금 상승에도 응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의 ‘은행 전세대출 현황’ 자료를 보면 올 상반기 말 기준 은행권 전세대출 잔액은 44조8000억 원으로 1년 사이 18.8% 증가했다. 최근 정부가 수치를 낮추려고 노력하는 가계대출 증가율(11.1%)보다 훨씬 높다.
이에 전세와 월세 인상률을 일정 수준 이내로 제한하는 전월세상한제가 지난 18대 국회에서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안에 포함되며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정부와 여당의 반대로 도입이 무산됐다.
그렇다고 내집 마련도 녹록지 않다. 가계대출이 늘어나는데 부담을 느낀 정부가 연이어 규제책을 내놓으며 오히려 실수요자인 서민들의 내집 마련을 막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경실련 관계자는 “수년째 정부의 전월세시장 방치로 전셋값은 급등하고 저금리로 인해 월세로의 전환이 가속화하고 있다”면서 “무리하게 빚을 내서 집을 살 수밖에 없도록 내모는 것이 아니라, 임대시장 안정을 통해 안정적인 거주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