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동진의 영화판, 세상판] 광화문 연가 그리고 이용관

입력 2016-10-1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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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작은 나라지만 서울에서 부산을 자동차로 오가는 건 다소 피곤한 일이다. 어쩌느니 저쩌느니 해도 꼬박 5시간 가까이를 운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긴 시간 운전에는 음악이 있어야 한다. 이맘때면 이문세 노래가 최고다. 아니 그의 노래밖에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광화문 연가’가 좋다. ‘사랑이 지나가면’을 들으면 언제나 그렇듯이 마음이 아프다. 이문세는 좋을 것이다. 때가 되면, 이렇게 특정한 시기가 되면 사람들이 늘 자기 노래를 찾으니까. 한국의 가을은 이문세를 찾게 만든다. 가수에게 그것만큼 기쁘고 황홀한 이야기가 어디 있겠는가.

‘사랑이 지나가면’ 때문만은 꼭 아니었지만 부산을 오가면서 자꾸 한 사람이 떠올려졌다. 그의 이름은 이용관이다. 그에게는 이제 ‘전(前)’ 자가 붙는다.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그는 20년 동안, 이런 표현이 얼마나 진부한지 잘 알지만, ‘몸 바쳐’ 일해 왔던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쫓겨났다’. 2750만 원인지 얼마인지에 해당하는 돈의 회계 처리 때문에 업무상 횡령이라는 죄목이 그에게 덮어씌워졌다. 사람들은 그 돈의 액수에 놀랐는데 아마도 그건 미르 재단이니 K스포츠 재단이니 하는 것 때문에 조성된 천문학적 수치의 돈과 비교할 때 ‘쥐꼬리’에 해당하는 규모여서 그럴 것이다. 무엇보다 20년 동안 회계상 잘못 처리한 것이 저 정도라면 역설적으로 청렴도가 매우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셈이어서일 것이다.

9월 말에 열렸던 1차 공판에서 검찰은 그에게 이례적으로 징역 1년의 구형을 내렸다. 26일에 있을 선고 공판에서 그에게 실형이 선고될 가능성은 없지만 어쨌든 고발자인 부산시와 (다분히 정치적 의도를 갖고 있다고 의심되는) 검찰은 그를 전과자로 만들고 있다.

6일 개막돼 15일까지 계속될 영화제 현장에서 당연한 얘기지만 이용관의 얼굴은 전혀 찾아 볼 수가 없다. 그는 영화제 기간에 부산을 떴다. 동서대 영화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그의 거주지는 부산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금 파주에서 홀로 낚시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용관 전 위원장과 함께 기소된 전양준 전 부집행위원장 역시 부산 대신 프랑스 리옹 영화제를 즐기러 갔(지만 전혀 즐겁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되기까지 이용관 자신의 책임도 크다. 영화계 중론은 그 스스로 타협하지 말고 싸웠어야 옳았다는 것이다. 중간에 그는 공동위원장 체제까지 만들어 자신에게 겨눠진 예봉을 피하려고 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자신의 직책과 영화제 독립성 확보를 위한 정관 개정 문제를 투 트랙으로 나누지 말았어야 했다. 자신의 ‘목’과 영화제의 독립성은 하나라는 점을 보여줬어야 이겼을 것이다. 선 정관개정, 후 재신임 결정을 요구했어야 옳았다는 얘기다.

그걸 구분하는 순간 그는 이미 위원장 직을 잃은 셈이 됐다. 이용관은 의외로 정치(精緻)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70년대 학번이다. 70년대 학번들 대개가 80년대 학생운동 과정에서 정세 판단을 잘못했다. 이용관도 비슷한 오류를 저지른 셈이 됐다.

싸움에 패한 자, 말이 없어야 하는 법이다. 이용관은 지금 많이 억울할 것이다. 자다가도 몇 번이나 벌떡벌떡 일어날 것이다. 마음에 병이 생겼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부산영화제를 ‘좀 안다는’ 사람들 대다수가 그의 사퇴를 놓고 벌어진 지난 2년간의 과정이 결코 정상이 아니라는 점을 잘 알고 있음을 작은 위안으로 삼았으면 좋겠다. 일시적으로 찾아온 잔혹한 나날을 인내해 내기를 바랄 뿐이다.

대중가요의 가사는 늘 ‘자기 동일화’가 강하다는 특징을 지닌다. 이문세의 ‘사랑이 지나가면’의 가사를 이용관이 들으면 펑펑 울지도 모르겠다. “그대 나를 알아도 나는 기억을 못합니다” 등등의 가사로 채워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번 부산영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을 ‘변절자’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쇼와 인생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용관은 그렇게 옹졸한 사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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