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사보’ 접는 금융투자사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일주일 앞두고 금융회사들의 사보가 설자리를 잃고 있다.
사보는 기업과 사회단체, 정부기관의 대내외 홍보 목적으로 발행하는 간행물로, 주로 기업 내부 소식과 제품의 정보, 독자의 글 등이 담긴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달 말 시행 예정인 김영란 법에 사보가 언론으로 규정되며, 기업들은 앞다퉈 폐간과 전자간행물로의 전환을 서두르고 있다. 특히 사보 발행이 많은 금융사의 움직임이 발 빠르다.
이에 따라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출판인쇄 업체가 된서리를 맞을 전망이다.
◇사보 발행하는 금융사는 언론사? = 김영란법은 ‘언론 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언론중재법)’에 준해 언론사를 규정한다. 언론중재법 제2조 제12호에 따르면 설립 목적 및 주된 업무가 언론인 고유한 언론사 외에도 사보, 협회지 등을 발행해 부수적으로 언론 활동을 하는 일반기업 등도 언론사로 규정한다.
특히, 동일한 제호로 연 2회 이상 간행물을 발행할 경우 정기간행물로 분류돼 법의 적용을 받는다. 다만, 생활정보지 등 정보 간행물과 웹진과 같은 전자간행물은 언론에 해당하지 않는다.
국민권익위원회의 ‘부정청탁 및 금품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해설집’은 이 기준에 따라 방송 345곳과 신문 3221곳, 잡지 등 정기간행물 7098곳을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는 언론사로 분류했다.
이에 따라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 정보를 담은 잡지나, 보고서를 정기 간행물 형태로 발간해 왔던 금융회사들의 고민이 깊어졌다. 은행과 증권, 보험사 등 금융기업들은 무형의 자산을 판매하는 특성상 부동산, 세무, 재테크와 상품소개 등을 담은 사보를 홍보의 수단으로 이용해왔기 때문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홍보 수단이 인터넷으로 많이 이동했다고는 하지만, 중장년층 고객들은 아직까지 종이 인쇄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현재 발행하는 사보나 애널리포트 등이 김영란법에 해당되는지 수소문하고 있다. 타 회사 추이를 살피면서 사보 발행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폐간 혹은 웹진 대체 잇따라 = 2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투르프렌드’라는 사보를 발행하는 한국투자증권은 지난 7월 사보의 정기간행물 등록을 취소했다. 지난 2007년부터 발행해왔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발행을 중지하고, 정기간행물 등록만 유지했던 상태였다. 하지만 김영란법 시행이 결정되며 지난 7월에는 등록 자체를 취소했다.
사보를 웹진으로 대체하는 금융사도 있다. 웹진 등 전자간행물의 경우 김영란법상 언론으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이다. 미래에셋대우는 30년 넘게 발행해온 ‘미래에셋대우人’의 종이 사보를 내달부터 발행하지 않고, 웹진으로 이어간다.
이 회사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종이 사보를 발행하면 정기간행물로 간주돼 언론으로 분류된다고 알고 있다”면서도 “원래 올 연말부터 종이 사보를 웹진 형태로 대체할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증권과 미래에셋증권은 사보가 김영란법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지켜본다는 계획이다. 이들은 각각 ‘매거진 크리에이트’와 ‘오블리제 클럽’을 발행하고 있다.
◇인쇄업체는 ‘직격탄’… 증권사도 ‘혼란’ = 기업들의 사보 폐간 여파에 출판 인쇄업계는 직격탄을 맞았다. 특히, 을지로 3가에 위치한 중소형 인쇄소들은 어수선한 분위기다.
이곳에서 25년 넘게 인쇄일을 해 왔다는 한 인쇄소 사장은 “청첩장이다 연하장이다 모두 인터넷에 밀린 판에 은행, 증권 담당자들이 간행물 발행을 중지할지 모른다고 말해줬다”며 “이제는 운영해봤자 인건비도 안 나올 판”이라고 불만을 늘어놨다.
또 다른 인쇄소 관계자는 “아직 사보 인쇄를 취소한다는 연락은 받지 못했다”면서도 “김영란법의 불똥이 여기까지 튈지는 몰랐다”고 말했다.
지난달 금융투자협회는 정기간행물 발행시 언론사로 분류된다는 조항에 대해 명확한 해석을 권익위에 요청했다. 하지만 주무기관인 권익위의 답변은 애매모호했다. 지난 12일 ‘청탁방지담당관 교육교재’를 내놨지만 “증권사가 투자자의 투자 판단을 돕기 위해 발행하는 리서치 자료 등은 청탁금지법 적용 대상인 ‘언론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만 제시했다.
이에 대해 한 증권사 관계자는 “애널들의 리서치 자료에 대해서는 김영란법의 대상이 아니라고 명확히 규정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사보도 여기에 속하는지 아닌지 요청했지만 정확히 밝히지 않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