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격호-신동빈 출국금지 '공동책임론' 부상... 신동주 '방어ㆍ공격' 투트랙 전략
롯데그룹 3부자 운명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예기치 못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를 계기로 경영권 분쟁이 발생한 지 1년여만에 3부자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 '형제의 난'도 변곡점에 놓이게 됐다.
치매약 복용에도 불구하고 검찰의 칼날이 신격호 총괄회장을 향하고 있어 롯데그룹의 비자금 혐의가 신동빈 회장의 '단독 책임'으로 마무리되기 힘들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동안 '아버지-형'의 진영 반대편에 있던 신 회장은 결국 예상치 못한 검찰의 수사로 신 총괄회장과 한 배에 타게 되면서 관계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아버지가 정한 후계자는 나'라며 경영권의 명분을 강조해왔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은 그룹의 비리 혐의를 신 회장 단독 책임으로 몰고 가기 위해 신 총괄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까지 알렸지만, 결국 명분만 잃었다.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경영권 탈환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신 전 부회장은 신 회장에 대한 '공격'과 신 총괄회장에 대한 '방어' 전략을 함께 도모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4부(부장검사 조재빈)와 첨단범죄수사1부(부장검사 손영배)는 8일 신 총괄회장과 신 회장에 대해 모두 3500억원대 횡령·배임 등 혐의를 적용해 출국금지 시켰다. 지난달 10일 검찰이 그룹 정책본부와 주요 계열사 등에 대한 대대적 압수수색을 벌이며 수사에 착수한 지 28일 만이다.
그룹 전반에 대한 비리 의혹 수사로 대주주 일가를 직접 겨냥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인 성과가 쌓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신 총괄회장의 치매 복용 사실에도 불구하고, 책임론에서는 자유로울 수 없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치매약 복용으로 검찰 수사 결과에 대한 신 회장의 '단독책임론'이 부상했지만 신 총괄회장이 원천적으로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과거 행위 당시에 정신적 판단능력이 온전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은 민·형사상으로 매우 어려운 일이고, 어느 시점부터 판단능력이 떨어졌는지 입증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법조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동안 "아버지의 정신은 온전하고, 나를 후계자로 지목했다"고 일관적으로 강조해온 신 전 부회장은 아버지의 검찰 소환 및 책임 등을 막기 위해 명분을 포기하고, 치매약 복용 사실을 언론에 알렸다.
신 전 부회장은 신 총괄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 가능성에 대비해 검사장 출신의 남기춘 변호사 등 변호인단을 강화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신 전 부회장 측은 신 총괄회장에 대한 수사 여부가 경영권 분쟁에서 또 다른 변수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신 총괄회장에게 법적 책임 소재가 발생할 경우 부친 '뜻'을 앞세워 진행했던 일본 롯데 임직원들을 상대로 한 설득 작업 역시 물거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은 검찰의 수사 결과에 따라 비리 혐의가 적용되면 아버지와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일본 롯데홀딩스 주총을 마치고 지난 3일 귀국한 신 회장은 신 총괄회장의 치매약 복용 사실을 알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5일째 그룹 본사 집무실에서 칩거 생활을 지속하고 있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신 회장이 계속 집무실에서만 업무를 보고 있다"며 "해외일정 기간이 길었기 때문에 처리할 사안들이 많다"고 말했다.
이는 수사가 장기화할수록 그룹 경영에 미칠 타격이 커질 수밖에 없는 만큼 협조할 것은 최대한 협조에 조속히 사건이 마무리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특히 언론 노출이 오히려 검찰 수사에 방해만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게 롯데그룹 고위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를 의식이라도 한 듯 롯데그룹은 신 회장의 이복누나인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이 구속된 것에 대해서도 "할 말이 없다"며 말을 아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