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내면 선악 담은 한강 ‘흰’·정유정 ‘종의 기원’
쟁쟁한 신작 소설들이 대거 출간되면서 한국 문학계가 부흥의 꿈을 키울 전망이다.
‘채식주의자’로 한국인 최초로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상한 소설가 한강의 신작 ‘흰’이 출간됐고, 정유정 작가가 ‘28’ 이후 3년 만에 ‘종의 기원’을 발표했다. 두 소설은 모두 인간의 내면을 다뤘지만, 각각 인간의 한없는 ‘순수’와 깊숙한 ‘악’이라는 상반된 내용을 모티브로 삼아 이목이 집중된다.
소설 ‘흰’은 ‘안개’, ‘초’, ‘성에’, ‘서리’, ‘눈송이들’ 등 온갖 흰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흰 것에 대해 쓰겠다고 결심한 봄, 한강이 처음 한 일은 목록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중 65개의 이야기를 ‘나’와 ‘그녀’, ‘모든 흰’이라는 세 개의 부제 아래 풀어냈다. 한 권의 소설이지만, 각 소제목 아래 각각의 이야기들이 한 편의 시처럼 펼쳐진다. 또 ‘흰’에는 작가의 말이 실려 있지 않다. 한강은 작가의 말을 요청하는 편집자에게 “이 소설은 전체가 다 작가의 말”이라고 답했다.
소설은 전작 ‘소년이 온다’와 이어진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 끝부분에 어린 소년 동호가 엄마의 손을 잡고 밝은 쪽으로 끌고 가는 대목이 있다. 그 대목을 쓸 때 ‘우리에게는 더럽혀지지 않는 무엇이 있지 않나. 무엇으로도 해소되지 않는 무언가가 힘있게 우리 안에 존재하고 있지 않나’라고 느꼈다”고 말했다. 그는 “투명하고 깨져도 복원될 수밖에 없는 그런 지점을 책으로 써보고 싶었다. 더럽히려야 더럽힐 수 없는 투명함, 생명, 밝음, 빛, 눈부심 같은 것들을 주고 싶다”면서 “인간의 밝고 존엄한 지점을 바라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금 나온 작품이 ‘흰’이다”라고 설명했다.
정유정의 신작 ‘종의 기원’ 역시 인간의 내면을 담고 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악’이다. 작품 안에서 늘 허를 찌르는 반전을 선사했던 정유정은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상상력을 뽐낸다. 지금껏 악에 대한 시선을 집요하게 유지해온 정유정은 신작 ‘종의 기원’에 이르러 악 그 자체가 됐다. 그의 독보적인 스타일로 ‘악’에 대한 한층 더 세련되고 깊이 있는 통찰을 선보인다.
등단작인 ‘내 인생의 스프링캠프’에서 정아의 아버지, ‘내 심장을 쏴라’의 점박이, ‘7년의 밤’의 오영제, ‘28’의 박동해 등 정유정은 작품에서 매번 다른 악인을 등장시키고 형상화시켰다. 그러나 그는 전혀 만족스럽지 않았다. 그들이 늘 ‘그’, 외부자였기 때문. 결국 정유정은 ‘그’가 아닌 ‘나’로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객체가 아닌 주체여야 했다. 우리의 본성 어딘가에 자리 잡고 있을 ‘어두운 숲’을 안으로부터 뒤집어 볼 수 있으려면, 내 안의 악이 어떤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가 어떤 계기로 점화되고, 어떤 방식으로 진화해 가는지 그려 보여야 했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윤고은, 박솔뫼, 한수산의 신작 소설도 독자의 서재를 풍성하게 할 전망이다. 윤고은의 세 번째 소설집 ‘늙은 차와 히치하이커’는 ‘알로하’ 이후 2년 만에 펴내는 책이다. 첫 장편이었던 ‘무기력 증후군’ 이후 대담한 상상력과 유쾌한 풍자, 신선한 문체로 현대사회의 가벼움과 무거움을 이야기했던 작가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의 작품을 묶은 이번 소설집에서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여덟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김승욱문학상을 수상한 박솔뫼의 네 번째 장편소설 ‘머리부터 천천히’는 저자 특유의 ‘쉼 없이 흘러가다가 익숙해질 무렵 덜컥 변하는 리듬 같은 문체’가 여전히 돋보이는 작품이다. 어디에서든 하루를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사람들, 표지판처럼 불쑥 나타나 저마다의 역사인 ‘기억’으로 시간과 공간을 증언하는 사람과 사물의 이야기를 박솔뫼는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풀어냈다.
또 한수산은 장편소설 ‘군함도’에서 일제강점기, 일본 내에서도 죽음 같은 노동으로 악명 높았던 하시마 조선인 강제징용과 나가사키 피폭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담아냈다. 27년에 걸친 자료조사, 집필과 개작으로 군함도 과거사의 진실을 원고지 3500매 분량으로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