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2016년 이세돌, 1986년 김훈

입력 2016-03-09 10:38수정 2016-03-15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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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뉴미디어부 모바일팀장

‘이세돌 9단에게. 세돌아, 하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두꺼비집 내려! 알파고 그 녀석의 약점은 전기야.’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결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알파고에 대한 소심한 일침. 싱겁긴 하지만 유쾌하다. 드디어 오늘이다. 인간 대 인공지능, 세기의 대결이 펼쳐진다.

아이폰 ‘시리’와 얘기를 나눌 때만 해도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삼성 스마트폰을 어떻게 생각해?” 묻자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는 재치라니. 사만다, 자비스, 써니(영화 속 인공지능 존재들이다)를 보면서도 그저 “뭐, 언젠가는”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랬던 미래가 현재로 다가왔다. 이제 기계가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는 데다 창의력과 통찰력까지 넘본다. 미래란 ‘먼 훗날’을 의미하는 건 아니었다.

최근엔 모 금융업체로부터 로보어드바이저(로봇+투자전문가) 서비스를 알리는 홍보물을 받았다. 생활 속으로 들어온 인공지능의 확산을 실감했다. 인공지능이 단순 직업뿐 아니라 의사나 법률가, 교수까지 대신하는 시대가 온다더니. ‘기자 밥그릇’도 예외는 아니다. 올 초 한 경제매체가 로봇이 쓴 기사를 내놓으며 로봇 저널리즘의 국내 상륙을 알렸다. 해외에선 시작된 지 꽤 됐다. 이미 5~6년 전부터 AP, 로이터, LA타임스, 가디언 등에서 활약하고 있다. 속보에서부터 기업실적, 사건, 스포츠기사까지 단 몇 초만에 척척 써낸다. 머지않아 심층기사까지 쓸 판이다(내러티브 사이언스라는 알고리즘 기사 업체는 4년 내 퓰리처상을 받는 게 목표라고 공언했다.)

위협받는 기자의 지위. 어디 로봇기자뿐인가. 블로그며 페이스북에는 보고 들은 소식을 올리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제 기사란 ‘기자증’을 지닌 이들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로봇이나 일반인들과 차별되는 기자의 가치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것일까.

이에 대한 물음을 안고 읽은 책이 ‘비욘드 뉴스(Beyond News)’다. ‘미래의 저널리즘’이란 부제가 붙은 이 책은 유명한 저널리즘 학자 미첼 스티븐스가 2014년 내놓은 저작이다. ‘비욘드 뉴스’가 주장하는 미래의 저널리즘이란 한마디로 ‘기자는 지혜로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혜의 저널리즘’을 위해 ‘5I’를 강조한다. 즉 교양있고(informed), 지적이고(intelligent), 해석적이며(interpretive), 통찰력 있게(insightful), 밝혀주는(illuminating) 저널리즘이다. 따지고 보면 ‘받아쓰기 뉴스’가 얼마나 많은가. 발표를, 전문가 멘트를 그저 엮어낸 뉴스는 넘쳐난다. 세상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뉴스 너머를 보길 원한다. 그 뉴스 너머란 기자의 사상과 관점, 분석이다.

사실주의 화가 메소니에의 예를 들어보자. 19세기 초반 그는 사실주의 화풍으로 당대 극찬을 받았다. 인물이며 풍경을 세밀하게 화폭에 옮겨냈다. 그러나 19세기 말 카메라가 보급되며 꼼꼼한 묘사와 정확성은 외면 받았다. 카메라로 찍어내는 화면과 뭐가 다르냐는 거다. 뉴스의 미래와 겹쳐지는 풍경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을 신속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은 인공지능이든 알고리즘이든 유능하게 해낼 거다. 그동안 언론이 숭배해 마지않았던 객관성은 이제 기자의 미덕이 아니다.

객관주의의 탈피, 과감한 주관주의. 1986년 ‘기자’였던 소설가 김훈은 당시 몸담았던 한국일보에서 ‘문학기행’ 시리즈를 연재하며 다음과 같은 기획 취지를 썼다.

‘우리는 객관적 사실의 열거로는 드러낼 수 없는 문학적 진실에 접근하기 위해 주관적 진술의 문장을 도입하기를 주저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주관적 진술에는 공적 타당성과 개방성이 있어야 한다.’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공적 타당성을 지닌 주관적 진술. 미래 저널리즘이 요구하는 ‘지적인 특종’을 위한 기자의 명제가 아닐까. 미래엔 통찰력을 갖춘 기자만이 살아남을 거라는 예언. 그 미래란 생각보다 ‘먼 훗날’이 아닐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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