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호재’ 등식 깨져… 디플레 우려 급증 탓
국제유가 하락세가 본격화한 2014년 말부터 작년 초만 해도 해도 저유가가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원유를 전량 수입해서 사용하는 우리나라 경제하에서 기업들은 유가가 내려가면 공장 가동과 원재료에 투입되는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이로 인해 제품과 유류비가 떨어지면 소비 주체인 가계의 실질 구매력이 올라가고 결국 경기가 좋아지는 선순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지난해 초 한국개발연구원과 산업연구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5개 국책연구기관이 작성해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유가 하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국제유가가 연평균 배럴당 49달러까지 하락하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0.2%포인트 올라갈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배럴당 100달러대 수준이던 국제유가가 20~30달러대로 급락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공급 과잉 요소 외에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 등 수요 감소가 맞물려 유가가 떨어진 것으로 우려돼서다.
최근 유가 하락은 공급 충격이 주도하고 있으나 그 이면에는 수요 둔화 우려가 자리하고 있다. 실제 2014~2015년 원유 등 액화연료 생산은 전년동월대비 평균 2.5%의 속도로 증가해 2012~2013년의 1.3% 증가 속도보다 2배가량 빨랐다. 반면 수요 증가율은 2012~2013년 전년동월대비로 평균 1.2%에서 2014~2015년 1.4%로 0.2%포인트 느는데 그쳤다.
이로 인해 경제 전반적으로 상품과 서비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디플레이션 발생이 우려되고 있다. 유가가 하락하면 생산자와 소비자 물가 지수를 즉각적으로 끌어내린다. 또 에너지 등의 가격이 싸지면 생산, 운송 등 다른 비용도 감소해 다양한 재화와 서비스 가격이 내려간다. 디플레이션이 지속해 소비자들이 물가 하락을 기대해 지출을 줄이고 기업은 생산을 줄이면 저성장에서 헤어날 수 없다.
또 저유가는 산유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제를 어렵게 하면서 수출 등 실물 경제 측면에서도 부정적 영향을 받았다. 우리 수출의 58%를 차지하는 OPEC, 러시아 등 신흥국이 저유가의 직격탄을 맞아 이들 나라로의 수출이 감소했다. 아울러 선진국의 경우 소비 개선 덕분에 수출에 우호적이나, 최종 소비재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국 수출의 특성상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다.
일례로 해외건설의 텃밭으로 불리는 중동 지역의 작년 수주액은 147억2600만 달러로 전년동기대비 52% 급감했고, 한국의 주력 산업 중 하나인 조선업도 선박 발주 및 취소 등 유가 하락의 직격탄을 맞았다.
전문가들은 저유가 위기를 타개하려면 수출 산업의 제품 경쟁력을 높이거나 생활물가 수준을 내려 소비자들이 유가 하락을 체감하고 소비를 늘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가계의 근로소득 증가율이 금융위기 이후 최저 수준으로 하락한 상황에서 휘발유 등 유류 제품에 대한 비탄력적인 세금 비중이 높아 ‘유가하락→투입비용 하락→중기 소비자물가 하방 압력→실질소득 증가 및 실질소비 확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설명이다.